그냥 마음의 울컥임과 부담과 짜증의 본심은 사랑이었다.
고요한 시간, 마치 한 밤중과도 다를 바 없는 그런 새벽이다. 현관에는 등이 켜지고 가칠하게 흰 얼굴로 엄마는 일을 나선다. 문이 닫히고 다시 고요한 시간, 조금의 시간이 지나 퍼르래진 새벽이다. 밤샘근무를 한 아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양말조차 벗지 못한 채 거실에 죽은 듯이 누워버린다. 다시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아침이 오는 만큼 점점 빛이 차오르더니 창 밖을 가득 채우고야 만다. 거실까지 비추이는 빛이 아빠의 노곤히 부은 얼굴을 덮쳤다.
아빠와 함께 밝은 시간을 보내는 날은 다소 불편함이 울컥 인다. 상상할 수도 없는 고단함으로 잔뜩 부은 그 얼굴과 마주 보는 것이 가끔 참을 수 없이 어렵다. 안쓰러움인지, 불쌍함인지, 애처로움인지, 고마움인지 당최 구분할 수 없는 카테고리들이 자꾸 눈에 스친다. 그 자체가 귀찮았고 일절 신경도 쓰고 싶지 않을 만큼 부담스러워 괜히 짜증이 났다. 겁이 났다.
아빠와 함께 밝은 시간을 보내는 날의 점심엔 늘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오늘은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 피자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아빠는 피자만 먹으면 깔깔하다며 함께 시킨 라자냐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라자냐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만 먹을 수 없다며 엄마와 동생의 몫을 포장했다. '식으면 맛없을 텐데..'라는 내 말을 듣고는 아빠는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괜찮으면 회사에 가져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그냥 집에 가서 가족끼리 먹는 게 좋다고 했고, 아빠는 전화를 끊기 전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저녁, 엄마는 식은 라자냐를 오븐에 넣어 데웠다. 그러고는 아빠에게 2년 전 구입 후 두 번도 쓰지 않은 오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며 이렇게라도 써먹는 게 낫겠으니 가끔 생각날 때 라자냐를 포장해오라고 했다. 아빠는 뿌듯하게 대답하며 웃어 보였다. 아침보다는 그 웃는 얼굴의 노곤함이 덜 해 보였다. 오븐에서의 조리가 끝난 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자냐라며 빨리 와인을 꺼내오라고 했다. 집에는 와인 오프너가 없었다. 코르크 마개를 따기 위해 온갖 도구가 나왔다. 젓가락, 포크, 가위, 망치... 등등등. 결국 코르크는 박살이 나 가루가 되어 나왔고 다소 모양은 빠졌지만 어쨌든 와인은 잔에 담길 수 있었다.
잔에 담긴 와인 한 모금에 라자냐를 콕 찍어 입에 가져간 엄마는 소녀처럼 행복해했다. 아빠는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또한 다소 울컥임이 올라왔다. 살아감의 노곤함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움이 된다는 것은 그저 변명이었다. 그냥 마음의 울컥임과 부담과 짜증의 본심은 사실, 사랑이었다. 진심으로 돌아가서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되는 그냥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