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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Apr 02. 2020

깊은 어둠에 잠긴 그 산은 참으로 고요했습니다.

그 산이 너무도 무서워 숨이 막히고 온 심장이 요동쳤습니다.

'쿵쿵쿵쿵 쿵쿵 쿵쿵 쿵 쿵쿵쿵'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요동칩니다. 다름이 아닌, 그저 제 앞에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 때문입니다. 가만히 위치해 그저 인간의 세월을 훌쩍 넘는 그런 시간을 보낸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이 너무 무서워 숨이 막힙니다.


 별 일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깊은 어둠에 잠겨있다는 것입니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마치 크게 숨을 쉬며 몸서리치는 강한 냉기를 내뿜는 듯합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자리를 걷어차고 달려와 찬기가 가득 들어 꿉꿉하고 무거운 저 몸으로 저를 뭉개버릴 것만 같습니다. 아무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분명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테니까요. 그저 숨이 막힙니다.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자꾸 생기는 것은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이 저를 주시하고 있는 듯해서입니다. 마치 온 세상을 호령하는 대호(大虎)가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저를 찾으러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내어 결국 붙잡아내고야 만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벌벌 떨며 저는 '하-' 하며 숨을 뱉습니다. 제가 방금 스스로 냈던 숨을 뱉는 소리가 혹시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을지 몸을 둘러싼 온갖 감각을 모조리 곤두세우고 기운을 봅니다. 저를 보고 있는 당신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누구도 저를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에 왜 그리 두려움을 씌워서 덜덜 떨고 있는지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깊은 어둠에 잠겨있다는 것입니다. 그 속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가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뛰어다닌다고 해도, 저 산을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 모를 산이기 때문에 더 두려운 것입니다. 저에게 무슨 말을 해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럴 수 있는 부류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에게 압도되어 사라지고만 싶은 그런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저에게 당장의 이름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고요한 탓에. 그래서 더욱 온몸의 감각을 소름 끼치게 합니다. 자꾸만 온 신경을 끌어당깁니다. 그렇게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저는 당장에라도 냉기 서린 그 꿉꿉한 무게에 꽉 잡혀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곧 죽게 생겼다, 이 말입니다. 곧 죽게 생겼다는 그런 말입니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에게 조금씩 다가가려 할수록 그 산을 둘러싼 채 서로를 공유하고 있는 각기 생명체들이 저를 위협합니다.  그들 때문에 온 몸이 가렵습니다. 자꾸만 따끔거리고, 당장 가볍게라도 긁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콜린성 두드러기가 있습니다. 저와 저를 둘러싼 공기는 확연히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부가 발발거리며 진동할 때마다 곧 파 먹혀 죽겠구나 싶도록 따끔거립니다. 저 자신이 스스로를 전혀 돕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자꾸만 견디지 못할 말을 던집니다. 죽으라 합니다. 가치 없다 합니다.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저에게 당장의 이름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무엇이라 외치든 간에, 제 스스로의 상태가 저를 얼마나 갉아먹으며 괴롭히건 간에 가만히 저를 바라만 봅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많은 이들이 지나가고, 많은 차들이 눈에 쌍라이트를 켜고 지나칩니다. 저들에게 아무리 소릴 질러봤자 결코 들리지 않을 겁니다. 울며 소리쳐봤자 비웃고 조롱하며 지나갈 겁니다. 왜 제가 여기에 던져졌는지 황당해할 겁니다. 그저 저의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아주 잠시 4초 정도 스쳐갔다가 그냥 영영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저 어둠에 깊이 잠겨버린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산은 저를 바라만 봅니다. 심장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습니다. 왠지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온 감각이 순간적으로 크게 저를 베어버리고 니다.


고요한 산. 그 산을 두려워하던 저도 죽음이 되었습니다. 깊은 어둠이 되었습니다.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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