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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워야 보이는 빛

구례_오산 사성암_섬진강(2)

by 김은진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사성암에 서면

구례평야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이 아득하고 평화롭게 보여

겪었던 내 마음속 억울함도 서운함도 두려움도

작은 티끌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발검음을 옮겨 소원 바위에게 다가가

비로소 하나로 뭉쳐진 바람을 털어놓는다.


산의 이름은 오산(鰲山)이다. 자라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한 사성암에 다녀왔다. 오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대사(신라), 원효대사(신라), 도선국사(통일신라), 진각국사(고려)가 수도하였다 해서 사성암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사성암 주차장에서 가파른 길을 지나면 비포장 언덕길과 포장길로 나뉜다. 언덕길로 방향을 잡아 천천히 오르며 아래를 보니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고 넓게 펼쳐진 구례평야와 지리산의 능선이 보였다. 십오분정도 걸었을까. 사성암의 후문으로 보이는 입구에 도착하였다.

뒤쪽으로 왔기 때문에 처음 보이는 건물이 해우소였다. 건물벽에는 소떼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유는 2020년 8월 폭우가 쏟아져 섬진강이 홍수로 범람하면서 마을이 침수되었는데 10여 마리의 소떼가 사성암까지 홍수를 피해 올라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들이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사람만 의지하는 암자가 아닌 소들도 의지하는 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공양간을 지나 정문에 도착하면 올라왔던 초원의 언덕길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놀란다. 가파른 암벽들 사이사이에 멋진 암자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넝떠러지같은 절벽 사이에 암자를 세울 수 있었는지 노고가 이만저만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약사전(유리광전)인데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는 곳이었다. 약사전에 오르기 위해 산능선을 따라 에둘러진 돌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검은색 자연석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걷기에도 편하게 수평과 너비가 잘 맞았다. 계단의 양옆으로 한쪽은 암벽에 닿았고 한쪽은 돌담처럼 쌓아 올려져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마치 네팔이나 티벳의 고원에 온 듯한 이국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약사전 안을 들여다보니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이 암벽에 새겨져 있었다. 키가 4미터 정도이고 음각으로 새겨진 부처님은 한 손에 약병을 들고 계셨다. 몸이 아픈 분들이 특히 건강을 기원하러 많이 오신다고 하였다. “약사여래불~약사여래불~.”이라는 스님의 불경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나와 가족들의 건강을 빌어보았다.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와서 다른 쪽 능선의 계단을 오르면 수령이 800년인 귀목나무를 볼 수 있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아직 잎이 나오지 않았는데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굉장히 멋있을 것 같았다.

귀목나무를 지나면 53불전 나한전이 나온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화엄세계 53불과 500나한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하며 아라한의 약칭이다.

나한전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섬진강이 구례평야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이 작고 아득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그 안에서 겪었던 내 마음속 억울함도 서운함도 두려움도 아주 작은 티끌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 능선을 따라 돌면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원바위가 있었다. 마음속 때가 걸러져서인지 오로지 하나의 바람만 떠올랐다. 조용히 소원바위에 털어놓고 내려왔다.

바위에 동전을 붙여 놓으신 분들도 있었다. 넉넉한 인심의 소원바위가 그깟 동전에 신경쓰겠나 싶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도선대사가 수행했다는 도선굴이 있었는데 방문한 날은 입구를 막아 놓았었다. 도선굴로 들어오는 빛이 불상을 닮았다고 한다. 앉으면 어깨의 양끝이 닿을 듯한 좁은 굴에서 도선대사가 마음을 모두 비우고 발견한 빛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가슴을 관통했을 빛이라 짐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배례석을 보았다. 암자가 생기기전에 스님들이 화엄사를 보며 절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파란 하늘에 검은 수리새들은 빠르게 하강했다 날아오르길 반복하고 있었다. 돌담을 기대고 서서 같이 간 문우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암자를 세우는 것도 이곳에서 수행을 하는 것도 기적처럼 보였고 네분의 대사님들이 보살핌이 찾아온 모든이들에게 미치길 바라며 섬진강 대숲길로 향했다.


오산에서 바라본 섬진강 전경


2020년 소떼들이 올라왔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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