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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로 시간여행_구례 쌍산재

구례_쌍산재_섬진강(1)

by 김은진

조선 후기 개화기 무렵, 쌍산재에 찾아와

'여성들도 이제 글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신여성의 마음일까?

어머님 심부름으로 잘생긴 손님께 곶감과 차를 내어주는

수줍은 소녀의 마음일까?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섬진강변 300리 벚꽃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떠 알람도 울리기 전에 일어나게 되었다. 한 달 전부터 KTX열차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문우들과 광명역에서 만나 열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한숨 잤나 싶었는데 벌써 남원을 지나 구례로 향하고 있었다. 2시간 10분 만에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구례역’이 아니라 ‘구례구역’인 이유는 무얼까? KTX역은 순창에 위치하고 있다. 노선이 남원에서 순천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구례는 섬진강을 건너서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순창에 역을 만들고 ‘구례의 입구’라는 의미에서 구례구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순창사람들이 억울하겠지만 구례에 화엄사와 지리산 등 명소가 많아서 이름을 양보한 것 같다.


이른 아침이라 조금 쌀쌀했다. 파란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추고 상쾌한 섬진강 바람이 불어왔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구례전통시장으로 향했다. 구례전통시장은 상설시장이 아니고 매월 끝자리가 3,8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간 날은 27일이여서 장날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음식점은 문을 열고 있어서 뜨끈한 소머리국밥으로 몸을 데웠다.

밥을 먹었으니 차를 마셔야지! 우리는 상사마을에 위치한 고택 ‘쌍산재’로 향했다. 쌍산재의 샘물을 ‘당몰샘’이라 부른다. 상사마을이 장수마을로 유명한 데에는 당몰샘의 역할이 크다. 이 샘은 “지리산 약초 물이 다 흘러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샘은 원래 쌍산재 안에 있던 샘물인데 마을 사람들이 자주 와서 물을 떠가니 집주인이 담을 옮겨 밖에서 약수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단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훈훈하였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 시간이다. 아담하고 소박한 대문을 들어서자 5000평 규모의 쌍산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입구를 지나 부엌으로 보이는 관리동에서 차와 커피를 주문했다. 바로 옆에는 얕은 담벼락으로 둘러진 장독대가 있었다. 붉은 고추를 가득 담은 대나무 키는 항아리위에 얹혀있었다. 장독대의 오른쪽으로 위치한 안채는 시골집처럼 아담했지만 지붕의 끝이 날렵하게 하늘로 올라 붙은 검은색 기와는 멋스럽고 운치 있었다.


안채의 끝에는 유명한 뒤주가 밖에 돌출되어 있었다. 바로 춘궁기에 곡식을 어려운 이웃에게 빌려주었던 ’나눔의 뒤주‘다. 그런 헌신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고택이기에 사랑채와 뜨락의 핀 꽃들도 모두 정다워 보였다. 처마에 메달려 있던 곶감과 시래기 마늘도 모두 인정 많고 부지런한 안주인의 모습을 그리게 만든다. 곳곳에서 핀 동백꽃들과 산수유꽃을 보며 차를 마시니 내가 ’쌍산재‘에 아주 중요한 손님이 된 기분이 들었다. 초봄에 동백꽃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고 있던 터라 이때 만난 동백꽃이 더 반가웠다.


문우들과 이런 저런 설정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소곳하게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어떤 설정을 하시는지 궁금하였다. 조선 후기 개화기 무렵, 쌍산재에 찾아와 ’여성들도 이제 글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신여성의 마음일까?, 어머님 심부름으로 잘생긴 손님께 곶감과 차를 내어주는 수줍은 소녀의 마음일까? 비록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지만 한옥을 구경하며 마치 오래전 내가 이곳에 살았던 것처럼 마음속에서 재미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친숙해진 선조들의 옛 모습 때문일 것이다.


차를 반 정도 마시고 장독대 너머로 올라가가 대나무 숲길로 갔다. 수령이 오래된 대나무 숲길이 집안 정원에 있었다. 방호산(지리산)의 서쪽에 자리 잡은 집이라는 뜻의 ’호서정‘을 지나 동백터널을 지나며 환호했다. 희안하게 동백나무가 휘어져서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군데군데 땅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을 주워 손에 올려 보기도 했다. 어릴 적 알사탕을 받았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넓은 잔듸 밭과 연못을 지나니 서당채로 향하는 ’가정문‘이 등장하였다.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서당채는 집안 아이들이 모여 글공부를 하던 곳이었는데 마을 아이들도 찾아와 같이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외진 곳에 동네 꼬마들이 다 모여 공부를 할까. 어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기만을 기다리며 꼼지락 거리고 있었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독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키우셨나보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들이 계셨던 경안당 옆에는 사도 저수지가 있었다. 저수지로 향하는 문이 집안에 있어 마치 쌍산재 주인이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도저수지는 일제강점기때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사도리에 만들어진 공용저수지였다.

쌍산재의 멋진 풍경과 넉넉한 인심에 반한 하루였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잘 갖춰져 있어서 내가 조선시대 후기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좋았다. 특히 동백터널이 멋졌고 전남 민간정원 5호로 지정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고 오래된 고택에서 문우님들과 차를 마시며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부터 들떴다. 긴 겨울을 잘 견디고 이곳오니 기운이 솟았다. 나오면서 시원한 담몰샘에서 물을 마셨다. 회춘하여 내일 사람들이 못알아보면 어쩌지?기분좋은 상상을 하면 오산 사성암으로 출발했다.

사진 속 주인공 되어보기~



장독대와 안채 사이에 고추가 말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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