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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가는 걸음을 늦춰본다

예천_회룡포_내성천

by 김은진


회룡포는 육지 속에 있는 섬이다. 경북예천에는 내성천이 360도에서 10도 모자란 350도 물이 휘돌아 가는 곳이 있다. 이곳은 용이 도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회룡포'라 부른다.

이곳을 감싸고도는 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여 영주, 예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천천히 흐르는 내성천은 낙동강으로 떠나기 전에 마을 곳곳을 눈에 꼭꼭 눌러 담고 싶어서 휘돌아 간 걸까.

풍경은 기이하면서도 애절했다.


도착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그 유명한 단골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연예인들의 친필사인이 즐비했다. 순댓국과 숯불오징어 볶음을 먹고 회룡포로 향했다.

주차장입구에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장안사가 보인다. 범종이 놓여 있는 전각이 보이고 떨어지는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전날 봄비가 와서인지 공기는 더 쾌청했고 벚꽃은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은 조금 남아 있었다. 전각사로 가는 길옆 석축에는 개나리가 피어있고 바닥에도 개나리꽃이 떨어져 있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흩뿌려져 있는 벚꽃과 개나리꽃이 꽃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회룡포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쉼터와 안내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해설사분이 설명을 듣고 가라고 붙잡으셨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안 보이니 설명을 듣고 가이소, 저 앞에 저기 산 보이지예?"

지팡이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산등성이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저게 바로 하트산! 그 옆에 보이는 게 남자산, 하트산 오른쪽이 여자산입니더."

"와! 정말 하트처럼 생겼네요?"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성천이 빨리 흘러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산도 사랑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서로를 잘 감싸고 보듬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회룡대를 올라가 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는 시를 적어 놓은 전시판이 많이 보였다. 전시판은 생나무를 세로로 잘라 결이 드러나게 세워져 있었고 안도현, 김용택, 정석주, 나태주, 김광섭 등의 시인들의 시가 전시되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회룡대가 보였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솔향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들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정자에서 보다는 아래 내려와서 찍어야 했다. 정자에서는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화면이 가렸다.

정자에 내려와 나무난간에 카메라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 모습도 핸드폰으로 사진에 담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 다시 회룡대에 올라앉아 생각해 보았다. 이곳은 드라마 가을동화와 1박 2일 촬영지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360도에서 10도만 육지와 붙어 있고 350도는 강이 되는 곳.

나머지는 내성천이 잔잔히 흘러가는 곳.


어쩌면 우리는 회룡포처럼 10도만 현실에 몸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을 살피지만

나머지 350도는 그리움과 함께 하진 않은지

그 그리움 속엔 나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젊은 시절의 모습,

스쳐간 인연들과 가슴 뛰게 했던 도전들,

함께했던 친구들과 서툰 감정들,

아기였던 아이들 모습과 새댁이라고 불리던 모습,

그런 그리움이 가득 느껴졌다.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더 특별한 곳인 것 같다.


산능선을 따라 20여분 더 걸어가면 봉수대가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면 용포대가 나온다.

산에는 키가 큰 소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었고 봄 날씨 치고는 바람이 차가웠다.

걷기에 좋은 산길 따라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반갑다고 손짓을 하는 것도 같고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강변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차로 이동해서 뿅뿅다리로 갔다.

공사장에 철판 같은 것을 쭉 대어 놓았는데 폭이 50cm 정도도 안 돼 보였다.

더 군다다 철판아래에 있는 파일이 약하게 세워져 있었다.

유속이 빠르지 않은 내성천이었지만 흔들리고 강물이 흘러가는 게 보여서 위험해 보였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다리 위에서 보는 강물이 유속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방금 올라갔다 내려온 산의 파릇파릇한 초목들로 뒤덮인 모습이 강물에 비치었다. 조금 더 떨어져서 제2 뽕뽕다리도 세워져 있었다.

강변의 모래는 바닷가 모래보다 굵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낚시하고 헤엄치고 잡은 물고기도 구워 먹었을 생각을 하니 참 복 받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이곳을 돌며 따뜻한 모래사장에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남겨 보았다.


그리움

나태주

가지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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