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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Aug 19. 2022

세 개의 우산

나도 예쁘고 튼튼한 우산으로 남고 싶다.

“포천하면 이동갈비지!” 이번 여행지는 포천으로 정했다. 

 가족 여행지 결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건 중에 하나는 먹거리다.

어느 여행지나 대표음식이 있다. 횡성하면 한우, 평창하면 메밀국수나 전병, 대부도에선 바지락 칼국수, 태안에선 우럭과 산낙지다. 겨울철 석굴이 생각날 땐 아버지 고향인 홍성 남당리로 향한다. 이번엔 포천으로 가서 이동갈비를 제대로 즐길 계획이다. 

 

신랑은 야근이 많다. 늦게까지 일도 하지만 회식도 많다. 그러니 주말이 되면 피곤해하여 캠핑을 못했다. 보통 펜션으로 갔다. 캠핑을 가면 텐트도 쳐야 하고 음식 만들고 씻는 것도 공동취사장에서 해야 하니 엄두가 안 났다. 다행히 요즘엔 글램핑장이 많이 생겨서 간단히 몸만 가서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어서 좋다. 숙소는 텐트가 아니라 카라반으로 정했다. 좁을 것 같다. 하지만 또 그런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릇도 거기 다 있고 고기도 포천 이동갈비 직판장에서 사기로 한 우리는 수영복과 옷만 챙겨서 출발했다.

 오후 3시부터 입실이니 근처 관광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산정호수로 갈까, 허브마을로 갈까 망설였는데 허브마을로 정했다. 예전에 평창 허브마을에 갔을 때 좋은 기억이 있어 그렇게 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주차장을 지나 허브차와 허브 용품들을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허브마을 구경에 나섰다. 

첫 코스는 우산길이다. 흐린 날씨라 우산길이 더 잘 어울렸다.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우산들이 받쳐주고 있었다. 진한 보라색, 흐린 보라색, 진한 분홍색, 흐린 분홍색, 흐린 남색, 오렌지색, 밝은 초록색의 우산들이 한 줄에 다섯 개씩 길을 따라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 하늘이 흐리긴 했지만 빛이 우산을 통과하면서 더 예쁜 색깔로 보였는데 우리 마음도 무엇을 지나오면 저리 예쁜 마음이 될까 생각했다.

 우산의 색깔을 따라 떠오르는 꽃이 있었다. 진한 보라색 라벤더, 흐린 보라색 라일락, 진한 분홍색 장미, 흐린 분홍색 진달래, 밝은 붉은색 양귀비가 있다. 초록색은 아카시아 잎이 떠올랐고 메타스퀘어 나뭇잎의 커다란 높이에 작게 매달려 귀엽게 나풀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흔하디 흔한 우산으로 이렇게 멋진 길을 만들어 놓다니,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여러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놀이터에서 놀지도 못하고 고무줄놀이도 못해서 우산을 겹겹이 겹쳐놓고 친구들과 동그랗게 텐트처럼 만들어 놓고 놀던 생각이 난다. 우산 두 개가 한 집이 되고 그 집에 들어갈 때는 ‘띵동’하고 말로 벨을 눌러야 된다. 그 안에서 과자도 먹고 소꿉놀이도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비가 그치면 우산은 바로 무기가 되어 동네 꼬맹이들과 “자! 덤벼라!”하면서 놀았는데 그러다가 우산 망가지면 엄마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다. 

 예전엔 일회용 파란색 비닐우산이 있었는데 우산을 안 가지고 출근한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에 많이 사서 쓰고 오셨다. 파란색 비닐은 금방 벗겨지고 보통 대나무로 된 살만 남아 있었는데 거기다가 실로 과자를 매달아 걸고 언니들과 과자 따먹기 놀이도 했다.


 난 그림 솜씨가 별로인데, 그래도 컴퓨터 앞에서 오래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보니 가끔 포토샵으로 끄적일 때가 있다. 가지고 있는 몇 점의 그림 중에 우산 그림도 있다. 그 그림을 그리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장맛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었는데, 자취를 하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같이 저녁 식사도 준비하고 장도 보고 그런 가족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커다란 우산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내 모습을 그리고는 나에게 평생 우산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연애하고 있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물론 내가 가족을 위해 더 큰 우산이 되어야 하는 엄청난 반전이 있었지만 서로의 우산이 되어 힘들 때 기댈 수 있으니 좋긴 하다.

  동갑끼리 결혼해서인지 신혼 초에 신랑과 기싸움이 대단했다. 서로 이해하기보다는 이기려고만 하다 보니 그랬나 보다. 신랑 때문에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큰아이가 그 작은 고사리 손으로 티슈를 뽑아와 한참이고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너무 내 눈을 세게 닦아서 아파서 더 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사춘기인 큰 아이가 속상하게 하면 작은 아이가 와서 안아준다. 또 작은아이가 속상하게 하면 남편이 와서 토닥인다. 이렇게 나에겐 세 개의 우산이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날이 흐리다. 면소재지에서 포장해온 이동갈비와 등갈비를 펼쳐놓고 신랑은 굽기 시작한다. 아이와 나는 수영장으로 가서 흐리지만 수영은 해야 한다며 첨벙이고 논다.

항상 정성 들여 고기를 굽는 신랑은 라벤더처럼 짙은 보라색 우산이다. 별로 예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맛있게 고기를 구워서 식사시간이 기다려진다. 

 첨벙첨벙 수영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는 밝은 분홍색 우산이다. 진달래 꽃잎처럼 보드랍고 항상 웃게 한다. 집에서 혼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큰 아이는 능소화처럼 주황색 우산이다. 거친 환경에서도 늘 열심히 꽃을 피우는 아름답고 강한 능소화색이다.   


 한참 동안 수영을 하다 보니 배가 많이 고프다. 이제 이동갈비를 뜯어야겠다. 

 숯불에 타지 않게 잘 구워낸 걸 보니 신랑은 역시 고기굽기 장인이다. 이렇게 고기를 잘 굽지 못했으면 나랑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도 맛있다고 난리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우산길이 머리에 자꾸 떠오른다. 

월요일 아침부터 일기예보를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우산을 챙긴다. 

“오늘 오후에 비 오니 우산 가져가!” 우산길을 걷고 나니 튼튼하고 아름다운 우산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색은 밝고 붉은 양귀비 꽃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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