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 키우기

듬직한 소는 마음을 넉넉하게 하였다.

by 김은진

농장에 드디어 소를 키우게 되었다.

부모님은 가축을 좋아하셨지만 전문적으로 소를 키울 생각은 별로 없으셨다.

소일거리 삼아 이런저런 가축을 키우는 것인데 송아지는 한 마리에 몇백만 원이니 엄두를 못 내셨다.


그때쯤 둘째 언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젖소 목장을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고 있던 영농후계자였다. 나는 영농후계자라는 낯선 단어가 황태자와 자꾸 헷갈렸다.

총각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양념 한 마리를 사 와서 소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젖소들을 돌보며 집안의 생계는 물론 형들 공부시키고 누나 시집보내는데

큰 공헌을 한 바 있기 때문에 형들도 어려워하는 아주 든든한 막내라고 소개하던 청년이었다.

말솜씨가 좋진 않았는데 끊임없이 말을 해서 서로 어색할 시간을 주질 않았다.


우리 집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서너 달 때쯤 되었을 때 아버지도 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사야 하며 먹이는 무엇을 줘야 하고 하루에 사료는 얼마나 먹는지 등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 집을 짓기 시작하셨다. 이미 여러 동물의 집을 지으셨기 때문에 스무 마리 정도 들어갈 축사 정도는 금방 지으셨다.

며칠 후 새벽에 소 8마리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그날은 정말 아버지도 기분 좋아하셨다.

하루 종일 소 곁에서 이리저리 살피고 좋아하셨다. 열 마리를 채우고 싶으셔서 곧 더 사실 거라며 흐뭇해하셨다. 저녁때 집에서 친구분들과 맥주를 한 잔 하시며 즐거워하신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밤늦게 우사에 나가 보았다.

보름달 속에 있는 토끼와 절구통을 들어내고 소들과 내가 있는 우사가 달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우사는 지구의 중요한 위성이 되어 밀물과 썰물을 조절하고 암탉이 주기적으로 알을 낳게 하며

전 세계 여성들의 생리를 조절할 만큼 아주 중요한 곳이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가축을 키우시면서 뿌듯해하시는 것을 이때 처음 보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다가 고급 승용차를 타시는 편안함과 자부심이 생기셨다.

소는 덩치가 커서 일이 많을 것 같지만 별로 없었다.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점잖게 먹고 조용히 지냈다.

사납지도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신없게 굴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소의 매력에 푹 빠지셨다.

하지만 소를 많이 늘릴 수 없었다. 점잖다고는 하지만 주사를 놓거나 출산을 하거나 우시장에 갈 때 소를 움직여야 했는데 커다란 소가 이리저리 뒤척이거나 버티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룰 때 힘이 있어야 하니 아버지

연세에 많은 소를 키우기는 힘드셨다. 가끔 우시장에 갈 때는 버티고 버티다 트럭에 실린 채 눈물을 흘렸다.

‘음매’ 소리도 이때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여기가 좋구나 이렇게 허술한 집이지만 떠나기 싫구나,

부족한 주인이지만 정이 들었구나 생각하며 서운하기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큰 소를 출하시키고 얼마 후에 아주 예쁘게 생긴 암송아지가 두 마리를 사 오셨다.

그중에 한 마리는 강아지처럼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다. 꽃분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고 자주 쓰다듬어 주었다. 무리와 자주 섞이지 않고 계속 아버지 뒤만 따라다니려고 하는 꽃분이가 이상했지만 싫진 않으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축사에서 부모님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니 꽃분이가 아버지의 가슴을 벽쪽으로 밀어서 받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소리 지를 틈도 없으셨단다.

숨은 막혀오고 목소리는 안 나왔는데 그때 마침 어머니가 돌아보고 옆에 있던 쇠몽둥이로 소를 물러나게 했단다. 부부의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이렇게 유일하게 위험을 알아챌 수 있는 인연인가 보다.


사람도 다 성격이 다르듯이 소들도 다 성격이 다르다. 특이한 소도 있었지만 누렇고 듬직한 소들은 우주를 움직이지는 못해도 부모님의 마음은 확실하게 움직인 듯했다.

부모님은 소들처럼 더 넉넉해지시고 편안해지셨다.

"음매"하는 울음소리는 '걱정마 내가 있잖아'하는 주문처럼 들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나무 쉼터 안양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