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의 달
평가에 사로 잡히지 않고 나를 끌어당기는 빛이 있다.
산속의 밤은 오로지 고요다.
부지런히 낮동안 움직이고 밤에는 할 일이 거의 없다. 가축들이 다들 잠들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면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가라앉는다.
산중 달빛 속을 거닐 때는 후레시 전등불이 없이도 다닐 만큼 밝고 고요하다.
특히 나는 겁이 없었고 같이 다닐 개들이 있었다.
달과 지구 사이에는 인력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서로 잡아 끄는 힘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
실제로 지각판도 20~40mm 정도 상승했다가 내려온다고 한다.
태양의 인력이 더 클 것 같지만 멀리 있기 때문에 달의 인력이 지구에는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인가 보다.
달을 보면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나의 몸은 산중에 두고 나의 영혼은 달 속으로 빨려 들어가 혼자 있는 나 자신을 우주에서 바라보는 것 갔다.
걸어가는 나. 물을 마시는 나, 뛰어다니는 나, 눈물짓는 나, 다시 웃고 있는 나
이런 모든 모습들이 다 한 편의 영화 같다. 물론 배우는 나 혼자지만 세상을 배경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달이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농장에는 이름이 없다. 아버지도 매출이나 사료값 같은 걸 생각하시지 이름 같은 건 생각 안 하신다.
난 이곳을 보물섬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니 이곳에 뜨는 달을 보물섬의 달이다.
실제 이 산중에 보물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저 높이 떠 있는 달이 이곳의 모든 것을 보물로 만드는 중이라고 믿기로 했다.
특히 나는 이 무대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중요했는데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저리도 밝다고 생각했다.
나는 많은 걸 깨닫지는 못했고 아주 소소하게 달을 보며 알게 된 바가 있다.
달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꿈을 꾸었을까.
달이 없었다면 우주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SF소설가 질베른이나 로켓 과학자 로버트 고다드는 어린 시절부터 달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연구를 하였다.
찬란한 우주개발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봤던 달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왔다.
달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아니 어쩌면 저 아래 닭 장에 잠들어 있는 닭들과 우사 안의 소들과 송아지 그리고
그 밑에 머리 박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염소들까지도 꿈을 꾸게 하는 것 같다.
달을 보며 그려낸 꿈들이 자연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 아닐까.
그 시절 나는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이고 수학은 좀 했지만 암기가 전혀 되지 않는 고충이 있었다.
원래는 어린 시절부터 암기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아마도 마음이 복잡해서 그랬던 것 같다.
도무지 세상은 알 수 없는 존재였고 감당하기 힘든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달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무언가가 있어서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어떤 순리대로 움직인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많은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났다.
특히 도스또옙스끼와 카프카, 호손의 소설을 여러 번 읽고 좋아했다.
난 비록 위대한 과학자나 소설가는 되지 못하였지만
가축과 인간들 모두를 꿈꾸게 했던 달의 친구가 되었다.
가까이 있진 않지만 언제나 달이 나를 토닥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내 삶을 차근차근 잘 살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에서 약간 모자랄 수도 있는 내 삶은 어쩌면 과소평가된 것일 수도 있고
굉장히 잘난 어떤 사람들은 어쩌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달빛 아래 잠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은 그다지 잘난 사람도 그다지 못난 사람도 없이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오늘 누군가가 자신이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여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구 어딘가에 떠 있는 보름달을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엔 옥탑방도 지하실도 산속도 바다 한가운데도 모두 보물섬으로 만드는 마술이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