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너무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을 안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은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있어서요."
회사의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남자들이 모이면 시작되는 군대 얘기가 누가 제일 고생했는지로 흘러갈 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르게 끊은 것뿐이다. 다만, 그는 바로 앞의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에 티 나지 않게 흠칫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몰랐다. 그의 얘기에 맞장구치며, 나의 어려움이 아직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반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아이는, 이제는 어디에서도 크게 자신의 다름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자신의 다름을 숨기는 아이는, 계속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다. 기껏해야 계란후라이가 있는 도시락을 먹고싶었던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다. 사회는 마치 행성처럼 이루어졌다. 일정한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 사회에 나가면,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라고,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행성에 살고 있으면서도 행성에 살고 있는 줄을 몰랐다. 다른 환경의 사람들은 좀처럼 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서 만난 내 동기들은, 24평보다 작은 4인 가정의 보금자리를 떠올릴 상상력이 부족했다. 그들은 나무랄데없이 밝고,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다.
취업을 하고 종종 나는 대학교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곳에서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밥을 사고, 술을 샀다. 내가 밥을 사고, 술을 사는 친구들의 집은 넓고 좋았다. 그렇게 술을 사고 들어오는 집의 방충망은 고치지 못했다. 거실의 브라운관 티비도 여전했고, 집안 구석구석 삭혀가는 알 수 없는 단지들도 여전했다. 나는 돈을 벌어 방충망을 고치지 않고, 좋은 집에 사는 친구들의 술과 밥을 샀다.
나는 마치 행성 여행자 같았다. 다니는 회사도 졸업한 대학교도 내가 나고 자란 행성과는 달랐다. 나는 슬픔 속에서만 빛이나는 행성에서 자랐다.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는 거친 소년들의 모임이 나와는 더 가까운 행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다른 행성의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중력이 계속해서 나를 끌어당기더라도 거짓말을 추진력 삼아 끊없이 다른 행성의 아이인척 날아올랐다. 그렇게 중력을 벗어나는 법을 배운 아이는 멈추지 않고 행성을 떠다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아버지의 행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 행성만큼 벗어나기를 원했던 곳이 없었다. 아버지와 다르기를 원해 마지 않았다. 나는 죽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밀어넣고 회사로 돌아왔다. 시원한 캔음료가 가득 채워진 '라운지'로 가서 탄산수를 마시면 내 몸의 숨구멍이 활짝 열리는 것을 느낀다. 죽음의 공기가 가득한 신경외과 병동이 아닌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 느껴졌다.
그 시간 동안 아버지는 하루종일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얼마 안 남은 자신의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버지가 여전히 옆에 있는 간병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를 궁금해하며 하루를 보낼 것을 모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나의 시간과 하루종일 기억나지 않는 어제를 더듬어가며 나의 전화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시간은 동시에 지나갔다. 그러나 모른 척했다. 여기에는 눈물겨운 간병의 이야기가 없다. 비겁하게도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간병을 하는지 살펴봤다. 뇌종양 카페의 눈물겨운 간병일기를 보면서, 이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간병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핸드폰 문자의 부고를 뒤져가며,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을 최근 순으로 정렬했다. 회사의 나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대략적인 결론을 내렸다. 요즘의 행성에서 죽음은 고독한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복한 자녀를 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커튼 뒤에서 한 시간 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매일을 보내는 것이다. 회사에서 나는 늘 죽는 아버지를 생각했고, 병원에서는 회사를 생각했다. 어느 곳도 편하지 않았다. 팀원들의 고민 상담을 하고, 내년도의 사업계획을 말하다가도, 갑자기 무대의 조명이 바뀌고 어두운 음악이 깔리고, 죽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더는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에게 무엇이든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조명은 곧 바뀌고, 음악도 바뀌고, 시놉시스도 바뀌어서 새로운 관객들 앞에서 새로운 역할을 연기했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커튼 뒤에서 간병인들과 고독한 죽음을 맞이할 텐데, 어째서 이런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질 때가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어린 내가, 엄마가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고 믿었던 내가, 혼자서도 잘 수 있게 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업고 무거운 시간을 혼자의 힘으로 저어갔다. 그렇게 이 근처에 겨우 나와 누나를 내려놓았다. 나와 누나를 내려놓는 데에는 십 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아버지가 죽는 데에는 겨우 일 년이 필요했다. 나는 아버지가 죽는 일 년을 업고 저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려면 마치 애써 떠나온 나의 먼 행성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행성을 그리워했으나 먼 행성에서 살기를 희망했다. 회사와 병원과, 일상과 죽음과, 행성과 행성사이로 표류했다. 수많은 별들이 나의 행성이지만, 그 어느 곳도 나의 고향은 아니었다. 나 역시 아버지 같이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나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리려고 했는데, 언제쯤엔가는 내리려고 했는데, 계속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