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내고 마라탕을 먹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아버지는 누나와 함께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는 날은 조금 어수선했다. 그저 병원 방문을 위한 행정적인 절차였던 PCR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 격리를 위해 예정보다 빠르게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아버지는 무언가를 달라고 한참을 말했다. 언어가 무너져 무엇을 찾는지 알아내는데 오래 걸렸다. 찾은 건 지갑이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진 않지만 병원에 들어갈 짐으로 챙기기 위해 꺼내어 놓은 아버지의 낡은 지갑이 눈에 걸렸나 보다. 지갑을 손에 넣은 아버지는 지갑을 열어 돈을 찾았다. 돈을 찾아 나에게, 지폐 한 장이라도 전해주려고 했다. 빈 지갑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자 그간 볼 수 없었던 낙담한 눈빛을 했다. 늦은 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아버지의 소변이 흥건한 옷과 이불을 가는 때에도 미안한 기색 한번 없었던 아버지는, 그렇게 수고를 치하하고, 이별을 다소 아쉬워했다. 그 밖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 뒤돌아보지 않고, 누나와 함께 택시를 탔다. 나는 아버지가 타고 떠나는 택시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선고받고 난 이후의 모든 것들은 다 마지막이었다. 택시를 타고 간 아버지는 다시는 똑같이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나는 마라탕을 먹었다. 마라탕이 먹고 싶었다. 자극적이고 화한 맛이 그리웠다. 아버지를 보내고 먹는 마라탕은 맛이 있었다. 맛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버지를 병원에서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라탕을 먹었다. 사람이 마라탕을 먹고 싶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마라탕을 먹고 싶고, 아이와 더 좋은 곳에 가고 싶고, 회사에 가서 돈을 벌고 평판과 커리어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아버지가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슬프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보내고 나는 마라탕을 먹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왔다.
회사는, 정돈되고 깨끗했다. 한참 코로나 때의, 대림동의 시장 같았던 병원이 생각났다. 그에 비해서 회사는 지나치게 청결하고, 단정하고, 정리되었다. 탕비실에 직원의 복지를 위해 몇 가지의 음료가 추가되었다. 더 효율적으로 업무에 몰입하기 위한 복지였다. 복지는 생명이 떠나는 곳이 아닌, 회사에 있었다. 아버지 곁을 단 5분도 떠날 수 없던 내가, 시원한 탄산음료 한 캔을 얼마나 먹고 싶어 했는지를 생각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시원했다.
한 두 명이 나의 근황을 물었다. 그뿐이었다. 크게 궁금해하진 않았다. 사실 난, 복직해서 누가 그간의 일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것은 단지 내 자의식의 과잉이었다. 점심식사 이후의 티타임은 조직개편과 누가 조직을 어떻게 맡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연애 서바이벌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나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다음부터 이야기에 소외되지 않도록 촉을 활짝 펼쳤다. 내가 정말로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속에 묻어두고, 아직은 내가 다 따라가지 못하는,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었다. 회사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