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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18. 2024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지난 말을 찾지 않기로 했다

집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머리에 긴 흉터를 남긴 개두술을 했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다녔으며, 그리고 나서는 항암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그 모든 상황에서 아버지는 큰 동요가 없었다. 아니, 아버지는 명랑했다. 선고받았던 죽음은 잊어버렸다. 오래된 기억은 남고, 새로운 기억은 자꾸만 사라지는 아버지의 머리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나는 처음 재활병원에 입원했을 때처럼, 아버지를 계속 데리고 나왔다. 운동을 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좋아질 수 있다고만 말했다. 나을 수 있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명랑한 아버지는 종종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건, '미스터트롯'이었다. 아침 일찍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다시 방사선치료를 나가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트로트 방송을 틀어드리고는 했다. 아버지는 그 출연진들을 기억하며, 나에게 알 수 없는 언어로, 출연진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다가는 이윽고 눈물을 쏟으며 울기시작했다. 여전히 뒤섞인 언어로 이찬원과 나태주에 대해 설명하며 울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울 때마다, 나는 그 울음을 모른척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의 그 울음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스터트롯'이 아버지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어떤 시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독 트롯방송만 보면 흘리는 그 눈물이, 그저 아버지 머릿속에 자라고 있는 암세포가 만든 오작동일 뿐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죽음까지 아버지가 슬퍼했는지, 얼마나 슬퍼했는지. 한마디 제대로 된 말 없이 곁에서 천천한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어려웠다.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죽음이 있을까. 차라리 아버지가 그때 사고로 바로 돌아가셨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한 번 크게 슬프게 울고, 조금은 그리워하고, 그러다 조금씩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지나갔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기억과 언어를 잃지 않고, 나를 붙잡고 오래전 시간을 이야기하고, 약도 좀 잘 먹지 않고, 그렇게 실갱이를 하다가, 마음이 곧 누그러지고 같이 눈물도 흘리고, 그리고 아버지가 하던 일들도 이렇게 이렇게 해라. 라고 말하면서, 찾아오는 죽음을 같이 맞았다면 그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그 둘 다 아니었다. 일 년은 길었고, 그 시간 동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한 말이래 봐야, '오늘도 병원은 꽤 오래 기다리네요.'가 전부였다. 아버지를 보고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대체 아버지가 무슨 생각이었을지를 생각하며 몇 번이고, 아버지가 사고가 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갔다 왔다.


사고가 나기 몇 시간 전, 아버지는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해서, 농사짓던 땅을 다 팔고 그중에 한 곳만 남겨서 집을 지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집을 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돈이 드는 일을 실제로 행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험한 농사일을 좀 정리하고 그만 두기를 바랐다. 그뿐이었다. 왜 갑자기 집을 짓겠다고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사고 나기 며칠 전에는 손녀에게 자전거를 사 줄 테니 골라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너나 나나 인라인트 스케이트니 뭐니, 그런 거 한 개도 해보지도 못해 봤고, 00이는 그런 것도 해주고 그래야지"

그 말은 오래 좀 기억에 남았다. '너나 나나 아무것도 못해봤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어린 니가 고생했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번 듣고 싶었다. 내가 잘한 것에 대한 칭찬이 아닌, 그저 단 하나, 내가 어려서 고생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아버지가 잘 못했든 잘 못하지 않았든, 나의 고생에 대해서 한 마디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생전 그 말 한마디를 해준 적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고, 나는 그래도 꽤 괜찮은 편에 속하며, 오히려 아버지는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는 말만 했다. 딱 한번,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때에 아버지를 붙잡고 내가 했던 고생에 대해서 말했을 때,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그저 나의 고생은 아버지의 고생에 비하면 별게 아니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 뒤로 다시는 아버지께 그런 말을 기대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아버지가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비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나 나나 아무것도 못해봤다." 그 문장에 나는 아주 작은 지분만이 있고, 책임소재는 분명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내가 경험했던 부재에 대한 최초의 인정이었다.


지난 말들을 하나씩 펼쳐서 열어보면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고 이전에 아버지는 무언가 알 고 있었을까. 아버지에게도 쉽지 않았던 삶이, 그렇지만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멈출 수 도 있다는 생각이 아버지에게 있었을까. 그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이른 새벽, 혼자 있는 시골집에서 멈출 수 없는 구토를 하며, 누군가에게 손내밀 수 없는 공포심에 아버지도 모르게 나에게 전화를 하려다 멈추고는, 날이 밝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전거를 사겠다, 집을 짓겠다 말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다시 난 수수께끼에 빠졌다. 지금쯤 아버지는 어디쯤에 있을까.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여기에 있는 걸까. 아버지는, 이제 단 일 년 만을 살 수 있는 아버지는, 지금 길을 잃지 않았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때, 내 열 살 생일에 케이크 하나 사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그리고 나와 누나를 시골집에 두고 올라가던 그날, 사실 아버지는 울었다고, 그런 말들을 해주었을까. 나는 그럼, 난 사실 서울에서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날,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모두 기억이 난다고, 출발하기 전에 누나의 코알라 인형을 넣었던 것, 아버지가 오래 걸릴 거라고 말했던 것, 그리고 시골집에 도착해서 할머니에게 매일매일 열밤을 자고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다는 걸, 그제야 아버지에게 말했을까. 그렇게 말했다면, 아버지는 나에게 또 무슨 말을 해줬을까. 아버지는 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 속에는 없는, 그렇지만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시 떠올라,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나에게 말해주었을까.


긴 시간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한여름 날도, 열 번째 생일도, 아직도 종종 엄마의 꿈을 꾼다는 말도, 아버지가 나와 누나를 서울에 데려와 씻기는 것이 어려운 일인걸 뒤늦게 알았다는 말도, 주저하다 하지 못했다. 하지 못한 말들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말이 궁금했다. 아버지가 전화로 나에게 '너나 나나 아무것도 못해봤다'라고 말했을 때, 다 하지 못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다 전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명이, 사랑이,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없는 것처럼, 말도 영원할 수가 없었다. 그 말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지난 말을 찾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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