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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y 12. 2024

그저 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죽음을 선고했다

"수술은 어렵습니다. 수술을 하면 아마 의식도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는 무감각하게 말했다. 그리고 설명도 짧았다. 대체 신경외과 의사는 무슨 일들을 하길래 모두들 이렇게 무감각할까. 그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기에, 그의 설명이 자세하지 않았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좋은 해석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명확했다. 신경교종이고, 그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의미했다.


"최대한 빨리 조직검사를 할게요. 나가서 안내받으세요."


그렇다. 다소 불명확하지만, 그는 죽음을 선고했다. 조금 전, 진료실에 들어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아버지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말했다. 그것은 다그침에 가까웠다. "내년 봄에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냐. 할 수 있겠냐." "이제 병원에서 나가고 싶지 않냐." 모든 말은 재활에 소흘해진 아버지를 다그치기 위한 내용이었다. "언제까지 병원에 있을 것이냐." 라는 말은 어느 정도 아버지를 자극했다. 숙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료실에 들어가고 단 몇 분만에, 병원 밖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이 되었다.


진료를 마친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특별히 말이 없는 아버지가, 인지력이 떨어진 아버지가, 의사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길 바랬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텐데. 누나와 나는 애써 침착하며, 지금의 외래가 평소의 통상적인 외출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누나와 내가 어려서부터 겪어야 했던 모든 일들에 대한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없어졌을 때도, 하루아침에 할머니집, 고모집, 다시 할머니집으로 사는 곳이 바뀌어 갈 때에도, 누나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한마디 말을 나누지 않았다. 찬가지로 우리는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실에서 다음 외래를 잡고, 수납 창구에서 결제를 하고 제증명을 떼는 일들을 했다. 누나가 수납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는 분주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사람들 다 죽는거여. 이렇게 있다가 다 죽는거여."

아버지는 뜬금없이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며, 죽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분명히 무언가를 듣고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인지력이 떨어졌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버지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도, 나와 누나를 낳고서도, 이혼을 하고, 나와 누나가 다시 서울로 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은퇴를 하고, 귀농을 하는 그 모든 해에 아버지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의 삶에, 더는 즐겁고, 새로운 계획은 없는 것이다. 천천히 종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다시 차를 타고 재활병원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병원 로비에서 헤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나 역시 한 번쯤은 재활병원에서 나와 다시 아버지의 삶을 사는 꿈을 꿨다는 것을 생각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아버지의 재활은 나와 아버지의 삶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다. 나는 늘 하던 인사처럼, 재활을 열심히 잘 받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누나와 나는 그 선고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보자, 정도만 말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빠르게 더 조용하게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는 회사에 연락을 했다. 나는 한 달간의 휴직을 통보했다. 회사에는 그래도 다소간의 설명이 필요했다. 왜 갑작스럽게 휴직을 통보해야 하는지, 사유를 설명해야 할 때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누나와 내가 왜 이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알았다. 그전에도, 그전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왔는지도 알았다. 그저 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는 도중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이를 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침착해야 하는데,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잘 참아왔는데, 그렇지만 나는 나의 침착함을 과대 평가 한 것이다. 아까 전에 진료실 안에서 터뜨려야 했을 울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말도 없이 통화를 종료하고 고개를 파묻었다. 모두에게 그렇듯이 아버지가 죽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이 이미 나를 떠났다. 헤어짐에 익숙하다. 그러니 그만 울 것이다. 그만 울고 나는 곧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회사에 전화를 하고, 방금 전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할 것이다. 어린 나는 참 많이 울었지만, 이제는 잘 울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울 것이다. 그만 울 것이다. 그만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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