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제목: 사회보장급여 신청자의 부양의무자 조사에 따른 사실 확인 서류제출 요청
1. 귀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 귀하의 모)최성례님은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을 하여 조사 중에 있으나, 귀하와의 가족관계해체를 주장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 붙임과 같이 관련 자료 제출을 협조요청하오니 2022.6.16까지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아울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 선보장 후 수급자에게 부양능력을 가진 부양의무자가 있음이 확인된 경우에는 보장비용 징수원칙에 따라 귀하께서 제출하신 자료를 근거로 우리 구 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부장의무자로부터 보장 비용을 징수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요조사내용: 부양의무자 가족관계 해체 여부 (신청인에 대한 연락 여부, 부양여부 또는 가족관계 해체 여부 등을 확인하고자 함)
붙임: 부양의무자 부양불이행 사유서 서식,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나는 편지를 읽고, 덮고, 숨기고, 누웠다.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어둠이었다.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어떤 장난일까 이것은. 삼십년 넘게 끊어진 모자관계에 대한 소명은 꼭 지금이어야 했을까. 아버지가 무너지고, 나도 무너지고 있는 이 순간에, 기필코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의지일까.
어려웠다. 사실, 난 어머니를 찾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공무원인 주변 지인을 통해, 합법적으로 어머니의 소재를 찾는 방법을 배웠다.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주민등록초본을 떼는 것으로 가능했다. 내가 아버지의 주민등록초본을 뗄 수 있는 것처럼, 방 안에 앉아 몇 가지 인증만 하면 엄마의 초본도 내가 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기묘한 관계를 느꼈다. 볼 수도 기억할 수도 없지만, 정부는 나에게 여전히 가족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의무도 있는 사이가 여전히 유효했다. 적어도 살고 있는 주소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청구서가 날아왔다. 이 서식은 나에게 또다시 선택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철부지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청구서의 값은 더 올라있었다. 어머니와 연락, 상봉, 그리고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금전적인 지원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피부양자의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이거나 국가의 것이어야만 했다. 나는 알고 있다. 한 사람이, 한 생명이, 얼마나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지를. 그 돈은 부족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그 돈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돈을 헤아려 볼 일이 없다. 지구에서 사람이 숨 쉬는데 필요한 산소의 농도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오직, 부족한 사람만이 느끼고 헤아려본다. 숨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소가 필요한지. 그러니 나는 이 청구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금액을 아득히 뛰어넘는 숫자일 것이다.
국가는 나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완전한 단절, 가족관계의 해체, 또는 완전한 부양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충분한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답을 이미 내렸다. 완전한 단절이다. 어설픈 나의 개입은 어머니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 때 이미 내 삶에서 없었으며, 지금의 나는 어머니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여기에 더해 잠시라도 나와 누나를 돌봐주었던 고모들, 나에게 옷 한 벌씩을 사주었던 작은어머니, 동화책이나 잡지 같은 것들을 물려준 사촌 형 누나들, 나를 대신해 지원금을 신청해 주신 선생님, 공부 잘하는 가난한 아이를 위해 할머니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이웃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성장했다. 그러니 답은 자명했다. 단절, 해체, 그리고 소명이다.
어려운 것은 소명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입밖에 꺼내어 볼일이 없는 이야기를 나는 글로 적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의 목적은 어머니와의 완전한 단절. 나는 가장 냉정한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써내야 했다.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글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하고 하찮은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만은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그러나 그 기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뜻밖의 상황에 주어졌다. 그날밤 나는 또 둘리의 한 장면 속을 허우적대며 자다 깨었다 잠들었다. 꿈속에서 공룡과 엄마와 나와 둘리가 마구 뒤섞였다.
소명의 글은 그 날이 지나도, 그 다음날이 지나도 쓰지 못했다. 나에게만은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글을 쓰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더 심한 글도 쓰게 될 것이다. 어린 나는 미친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 나는 기여코 그 글을 쓰고 말았다. 나는 적금도 붓고, 퇴직연금도 붓고, 상해보험에 암보험까지 들고, 부동산 대출이자도 내면서, 주식에 투자도 조금씩 하고, 종종 가족과 함께 리조트로 여행도 가고, 가끔은 비싼 생일선물도 사고, 쿠팡 와우도 다달이 하는 데에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보면서, 어머니만은 내 돈으로 부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유를 길게도 적어서, A4 용지에 출력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내 이름.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 그리고 '가족관계해체'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어머니와 헤어질 때의 나의 나이로부터 시작해, 어머니가 부재한 성장과정, 그리고 지금의 현황을 적은 뒤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후로도 본인이 직업을 구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모든 상황에서도 모친과 어떤 교류도 없었으며 사는 곳과 연락처도 모른 채로 현재까지 지내왔습니다. 이와 같이 실질적으로 모친과의 가족관계는 단절되어 가족이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소명합니다.
본인은 상기와 같이 사실대로 부양 불이행 사유서를 제출합니다.
소명자: 한 여 름"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린 내가 잠들지 못할 때 누가 나를 달랬을지 궁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주 어린 나에게는 보살펴 주는 엄마가 있었을 거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종종 엄마랑 같이 살던 때로 돌아가 모든 것이 다 꿈이었구나, 이제 다시 엄마랑 사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꿈을 꾼다는 말도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