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아버지 곁에 누워
죽는다면 어떨지를 생각해 봤다
고등학교 때, 나는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은 새벽의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창가에서 잠이 들 때면, 종종 이 버스가 사고가 나서 오늘 죽는다면 어떨지를 생각해 봤다. 어느 날은 괜찮고, 어느 날은 괜찮지 않았다.
오랫동안 죽는 것을 생각했다. 직접 죽으려고 해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아주 어릴 땐 죽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웠고, 클수록 무섭지 않았다. 나에게 죽음은 어쩐지 조금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무덤에 혼자가는 것이 좋았다. 여럿이 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조용한 산속의 무덤은 평안했다.
한동안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곁엔 죽음보다는 생(生)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무엇보다 아이는 생, 그 자체였다. 존재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공간과 시간에 생을 가득가득 채워 넣는다. 딸은 어째서 생이 아닌 다른 것들을 생각하느냐고 크게 소리쳐 울었다. 울고 자고 먹고, 우리가 산다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앞장서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아니, 사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산적이 없다. 처음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돌아온 것만 같았다. 원래 아버지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였고, 잠시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오는 길이 너무 쉬워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퇴원 수속을 하고, 방에 요와 매트를 깔아놓고, 아버지를 누위는 것으로 집에 오는 것은 끝이 났다. 그 간, 아버지가 병원에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치료가 아니라,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지 않아서였던 것 같았다. 죽을병에 걸려서야 아버지는 집에 왔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동안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이제 막 생으로 가득한 어린 나의 딸을 돌보는 것과 이제 곧 죽게 될 아버지를 돌보는 것. 삶의 가장 앞과 뒤가 우리 집에 있었다. 처음에 집에 올 때는 아버지가 딸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아버지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딸은 아직 젓가락을 쓰진 못했다. 한 숟갈 한 숟갈 반찬과 밥을 올려 입에 넣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우리 집을 나갈 때는 아버지는 숟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딸은 젓가락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딸이 아닌 아버지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드렸다. 아버지는 조금씩 시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배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재활병원에서 기저귀를 뗐다. 그리고는 팬티를 직접 빨아 입을 정도로 회복되었으나, 눈에 띄게 회복은 사라졌다. 집에 왔을 땐 하룻밤에도 두세 번 팬티와 바지를 갈아입고, 이불과 요를 빨았다. 아예 버릴 생각을 하고 이불 두 채를 샀다. 매일 밤 쉬지 않고 세탁기가 돌았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다시 기저귀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나, 딸과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기억이, 가까운 기억에서부터 먼 기억으로, 복잡한 언어에서 쉬운 단어로, 그리고 세수하는 법, 숟가락을 쥐는 법, 걷는 법, 더 나중에는 음식을 삼키는 방법까지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그 사람 자체, 우리가 성격 또는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중에도, 아버지 그 자체였다. 아버지의 다문 입과 허공을 응시는 눈빛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나약하고 겁도 많지만,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들을 감당해야 했고, 그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겨 고집스럽게 자신의 어려움은 끝끝내 한마디도 자식에게는 하지 않는 사람. 아버지였다. 그래서 난 기저귀를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병원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한은 아버지를 아버지의 위치에 두고 싶었다.
늦은 밤이면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와 곁에 누웠다. 불은 켜지 않았다. 어두운 밤, 침대가 아닌 바닥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있으면,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가 옆에 눞는 것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와 한 방에 들어와 누운 것이 오래되었다. 그것은 나와 아버지를 아주 오래전으로 데려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다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한 달에 한번 내려와 자고 가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어린 나는 한 달에 한번 아버지가 내려와 같이 잠들면 좋았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이불 속에 들어가 온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무섭지 않게 잠들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내 손가락을 하나씩 순서대로 꾹꾹 눌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내 딸이 잠들 때 손가락 끝을 하나씩 마주쳐, 피부가 닿게 해 주었다. 어린 나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닿는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주는 촉감이 좋았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면 아버지는 새벽 일찍 나갔다. 원래대로면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어린 나는 가는 아버지를 보지도 않고, 인사하지도 않았다. 나는 자는 것처럼 누워있었다. 누워서 울고 있었다. 크게 울지도 않고 그저 눈을 꼭 감고 가늘게 울었다.
아버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는, 이제 가야 하지 않냐, 늦겠다.라고 재촉을 하고, 그럼에도 아버지는 좀 더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다 일어났다. 나는 인사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윽고 아버지가 나가는 소리에도 나는 누워서 가늘게 울기만 했다.
아버지와 함께 누운 어두운 방에서 나는 몇 번씩 그곳으로 갔다 왔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 모를 어느 일요일 새벽의 방으로. 모든 것은 지난 일이다. 어린 나를 눈물짓게 했던 시간은 그렇게 별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월요일 출근을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울던 나는 내 안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문득 나타나는 것이지만, 어두운 방에서는 더 자주 나타났다. 나는 죽는 아버지 옆에 같이 누워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죽게 될 때, 내 곁에 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내 딸은 내가 기억하는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만은 그 시간들이 영원히 멈춰져, 내가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과자를 하나만 더 달라고 보채던 때로, 번쩍 들어 하늘까지 안아주면 한없이 해맑게 웃던 시간으로,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칭얼칭얼 잠투정을 하다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던 때로, 나 혼자서는 몇번씩이고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내 곁에 잠시나마 딸이 누워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미래로 흐르고, 부모는 죽고, 자식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한 집에 죽음과 생명이 이렇게 선명하게 있고, 나는 수시로 어린 나와 어린 딸과 아버지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 나는 버스에 앉아 졸며 생각했다.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 후로 오랫동안 죽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매일 죽는 것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과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과정이었으나, 이제는 다른 과정은 없다. 죽는 아버지 곁에 누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도 켜지 않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