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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27. 2024

85년생 한여름

80년대 생이 되고 싶었다.

촉을 활짝 펼친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쉬는 시간에 만화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조용히 숨죽이고 촉을 펼쳤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가 나온다는 그 만화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무지개가 펼쳐지고 알바트로스가 나타난다고 했다. 새로 방영하는 어떤 만화는 재미가 없고, 다른 어떤 만화에서는 주인공의 무기가 요요라고 했다. 나는 최대한 들리는 말들을 주어모아, 그 이야기에 끼고 싶었다. 아니, 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혹시나 그런 얘기가 나올 때 모르는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는 척을 하려고 했다. 집에서는 티비를 볼 수 없다고, 너네들이 하는 얘기는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노력은 가까스로 효과를 내는 듯 하다가는, 이내 곧 한계를 드러냈다. 이야기에는 끼지 못했다. 나는 집 마당에 혼자 앉아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나고 알바트로스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어떤 것일지 상상했다.


반 아이들의 이야기 주제는 곧 가요톱텐이 되고, 컴퓨터 게임이 되고, 16화음 핸드폰이 되었다. 만화영화에서 효과가 없었던 노력은 점점 더 효과를 보였다. 점점 더 익숙하게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것, 해보지 못한 것을 아는 척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디오 테이프는 없었지만 토요일밤 주말의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고, 멜로디언으로 피아노를 연습하고, 사촌 형들로부터 물려받은 8비트, 16비트 컴퓨터 책부터, 길에서 주운 최신의 게임잡지까지 모든 내용을 다 외우며, 가난의 흔적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것을 점점 더 수월하게 해냈다.


감추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첫번째 도전은 도시락이었다. 할머니가 싸준 단무지 단 한 개가 가운데 들어간 김밥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목요일도 바뀌지 않는 메뉴였다. 햄과 계란지단은 커녕 시금치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오직 밥과 김, 단무지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김밥은 곧 나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점심시간에는 아예 도시락을 먹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대신 운동장으로 나갔다. 열 살이 되지 않은 어린 나는, 배가 고프지 않고, 더 빨리 많이 놀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 남은 도시락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대문 앞 골목에서 먹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볼까봐 급히 먹었다.


급식이 시작되고, 더는 골목에서 도시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두번째 도전은 옷이었다. 여름이면 나는 농구공이 세 개 그려진 줄무늬 티셔츠를 입었다. 아버지가 옷 공장하는 친구한테 아주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그 티셔츠는 한벌 가격으로 세 벌을 살 수 잇었다고 한다. 나는 그 티셔츠를 여름 내내 번갈아 입었다. 내가 냄새가 나고 옷을 안 갈아입는다는 소문이 어떻게 내 귀에 들어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같은 옷이 세 벌 있다고 말했고, 친구들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방법은 내가 입고 있는 한벌과 똑같은 두벌을 할머니 몰래 가방 속에 넣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져간 옷을 가방 속에서 꺼내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주목과 웃음 속에 같은 옷이 세벌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굳이 그런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좋았다. 세상과 분별을 잘 몰랐던 나는 그제야 비로소 반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았다. 다소의 친절 속에 섞인 동정과 노골적인 모멸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알고, 피하지 않으며 사는 법을 열 살이 되어서야 늦게 배웠다.


그 후로 내 별명은 항상 옷이었다. 체육복, 청바지. 옷에 대한 별명은 교복을 입고 나서야 멈췄다. 그렇지만 가난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가난은 구석이고 굴곡진 곳이면 어디나 먼지처럼 쌓였다. 그것이 어디에나 있기에, 숨기기가 어렵다. 어쩌나 한 곳에 먼지가 묻으면 털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장롱 뒤 어느 구석에서 겨우 꺼낸 인형이라면 툭툭 털어 겨우 보이는 곳의 먼지는 치웠다 하더라도,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다 털어내긴 어렵다. 한 구석, 한 구석은 그렇게 대단하진 않다. 그런 구석은 이를테면 양말이다. 급식을 먹고 교복을 입는 나는 항상 뚫려있는 양말의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구멍이 있는 곳을 발가락 사이로 넣어 숨기려고 했다. 가난한 아이의 슬픈 점은, 그렇게 하면 자신의 가난이, 조금은 숨겨지고, 그래서 다른 반 아이들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구멍 뚫린 양말을 신는 가난이,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양말을 밀어 넣는 것으로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천 원에 세 개씩 파는 양말 트럭에서 양말을 하나 사는 것쯤은 못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린 나는 어디서 양말을 사야 하는 줄 몰랐고, 용기를 내어 들어간 아파트 상가의 속옷가게에서 양말의 가격을 물어보았을 때,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양말이 한 켤례에 삼천 원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걸 매일매일 새롭게 잘도 신고 다니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나에게 양말트럭에서 천 원이면 세켤례짜리 양말을 살 수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내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 친구들의 관심사는 스타벅스가 되고, 아웃백이 되었으며, 유럽배낭여행이 되었다. 스타벅스도 가보았고, 아웃백도 가보았고 유럽배낭여행은 가보지 못했다.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 이제는 좀처럼 가난을 눈에 보이지 않게 했다. 스무 살의 가난은 쉽지 않지만 스타벅스도 갈 수 있고, 아웃백도 갈 수 있다. 가난은 그 하나하나를 못하는 것에 있지 않다. 가난은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이를테면 엠티에는 가기 어려운 것이다. 엠티 비용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빈약한 살림살이로는 여행가방을 채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옷과 양말과 신발까지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보일 수 있었지만, 여행용 칫솔은 없었다. 집에는 온 가족이 다 같이 쓰는 수건이 몇년째 다섯 개쯤 되었으며, 여행가방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찌보면 하나하나는 크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렇게 하나씩 채워보자면 빈 곳이 너무나 많다. 수건이 부족하고, 칫솔이 부족하고, 팬티가 부족하고, 이불이 하나밖에 없고, 소파가 없고, 커튼이 없고, 손잡이가 제대로 있는 냄비가 없고, 그런 것들이다. 컴퓨터도 있고, 핸드폰도 있지만, 집에는 드라이기가 없다. 가난한 스무 살은 드라이기와 냄비를 사는 대신에 옷을 산다.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집의 방충망은 고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구멍이 너무 많기도 하다. 하나 둘, 몇 개 나있는 구멍을 메꿔보려 하다 보면 이내 지친다. 메꾸는 수고가 보여지지 않아서 그렇다. 구멍은 너무 많고, 수고는 결과가 없다. 대신에 생각한다. 언젠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이 창틀을 아예 바꿔버리겠다고, 언젠가는 아예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버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옷을 산다. 내내 방충망은 고치지 않는 것이다. 평범한 80년대생은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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