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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 Aug 07. 2023

매니저

서울, 2016

 세트는 가운데 원형의 무대가 있고, 그 무대를 빙 둘러싸는 관객석이 있는 구조였다. 6시 방향에는 심사위원석이, 12시 방향에는 실시간으로 무대 위 가수의 얼굴이 보이는 거대한 화면이 있었다. 10미터 밖에서도 땀구멍이 하나하나 다 보일정도였는데 누가 울기라도 하면 거기서 확대가 더 들어갔다. 심사위원석과 관객석은 모두 가파른 경사 위에 놓여있어서 가운데 무대에서 평가를 받는 가수가 내내 올려다봐야 했다. 관객석 사이사이에는 조명이 닿지 않는 긴 복도가 숨겨져 있어서 방송국 관계자들이 그 안에서 카메라 옆에 쭈그리고 앉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서서 촬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녹화 첫날인데도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드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70억이라는 예산의 일부로 만들었을 바벨탑 같은 이 압도적인 세트에서, 경험도 리더십도 부족해 보이는 메인 피디가 마이크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잠깐 휴식 10분, 그리고 10분 뒤 촬영 재개합니다,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10분 후 다시 녹화가 시작된다는 소리인지, 10분 휴식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 10분 더 있다 시작된다는 소리인지 불확실했지만, 어차피 이 많은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돌아올 리가 없었다. 오늘 이전에는 서로 한마디도 안 해봤을 것 같은 연예인 심사위원들이 숨을 참고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파닥거리며 자리를 떴다. 100명이 넘어 보이는 스텝들은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담당 작가도 진행상황이나 예상시간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리 가수 T는 4시간째 공용 대기실에서 쫄쫄 굶고 있었다. 눈치가 보여 대기실에서 못 나가겠다는 T의 카톡을 받고, 그날따라 하나같이 맛없어 보이는 편의점 도시락 중 하나를 골라서 대기실에 넣어주고 나왔다. 참가자 이외에는 여기 오시면 안 돼요, 내 뒤통수에 대고 누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세트로 돌아왔을 때는 40분도 더 지나있었지만, 다시 촬영하려면 한참은 남아 보였다. 지루함에 치를 떨면서도 무대가 제대로 보이는 이 자리를 뺏기기 싫어 그대로 서있었다. 매니저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이런 기다림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었고, 영원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녹화가 시작되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공연이나 심사평이나 보기 괴로울 정도로 횡설수설 이어서 그냥 이 모든 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빌고 있었다. 이때, 5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어떤 남자가 뒤에서 나타나서 옆으로 엉거주춤 지나가더니, 내 앞 시야를 딱 가로막는 위치에서 멈춰 섰다. 


 매니저임이 틀림없는 그 사람의 몸은 무대와 나 사이에서 쏟아지는 조명을 역광으로 받고 있었고, 우리가 서있는 복도는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는 건 없었지만, 살짝 비치는 윤곽만으로도 양복 위에 껴입은 등산조끼가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은 듯 번들번들해 보였다. 그는 자기 회사 가수가 등장해서 본인 소개하는 것을 잠깐 듣더니, 공연이 시작되려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서 양팔을 높이 들어 카메라 기능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 헤매던 손가락이 드디어 카메라 기능을 찾았을 때에는 무대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은 심한 빛의 대비를 제대로 담지 못해서 전체가 그냥 하얀색이었다. 그는 그걸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마구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뭘 잘못 눌렀는지 렌즈가 뒤집혀 본인의 얼굴이 나왔다. 일그러진 주름 안에 위치한 두 눈이 분명히 화면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뭐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찰칵찰칵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자 방송장비를 잡고 있던 촬영감독이 뒤를 돌아 그를 쳐다봤다. 그는 자기보다 20년은 어려 보이는 그 감독에게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며 90도 인사를 했다. 감독이 다시 몸을 앞으로 돌렸는데도 거기다 대고 계속 사과를 했다. 


 이 사람의 무능함에 모래를 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 검열을 할 새도 없이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어서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 회사 SNS 담당자는 저딴 사진을 도대체 어디다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곧, 그 모래 맛을 다 덮을 슬픔이 우리가 서있는 복도처럼 캄캄하게 밀려왔다. 저 세련되고 비싼 작은 기계가 한 중년 남자를 소외시키는 모습이 잔인했다. 저 사람 삶에는 핸드폰 카메라를 어떻게 쓰는지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지 걱정이 들었지만 나 역시 다가가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나 그날에 대해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이다. 자기 청춘을 다 바쳐 공연하고 있던 세상물정 모르는 한 아이와 그 아이의 꿈과 소망을 산산조각 낼 70억짜리 세트 안의 몇 백 개의 눈들, 그리고 어떤 매니저 아저씨가 했던 쓸쓸한 노력. 마지막으로, 그 뒤에 진을 치고 있었을 또 다른 수많은 중년 아저씨들의 은행 계좌.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사진가 크레딧: Jorge Garcia, @photosbyjorg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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