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치매와 나의 식이장애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본 외할머니는 앙상한 미라로 변해버려 있었다. 몇 백 년이라고 해도 믿을 시간동안 한 자리에 누워 천천히 풍화되어가는 할머니의 몸.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하얗고 쪼글쪼글해진 피부는 너무 얇아서 초록색 핏줄이 대리석무늬처럼 비쳐 보이는 유리 같았다.
그런 늙은 우리 할머니의 몸은 역설적이게도 갓난아기 같기도 했다. 누워서 간호사 두 명의 도움으로 대변을 보는 건 자신의 몸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는 경험일 것이다. 아무리 알츠하이머로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상태일지라도.
할머니에게 남아있는 건 뭘까? 혼잣말로 허공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걸 볼 때에는, 나라면 견디지 못할 지루한 공백의 시간 속에 할머니가 놓여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놓인다. 할머니의 머릿속은 여전히 바쁜 것이다. 여전히 영어를 배우고 싶으시고, 얼마 전에 이미 한 번 싹 갈아엎은 장롱을 또 정리하고 싶으시다. 매일 6시면 직접 하셨던 가족 사업장의 마감이나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빨간 자켓과 똑같은 걸 당신의 딸과 손녀와 하는 미국 여행 중에 꼭 찾아야 했던 과거의 기억도 소환되는 것 같다.
그 빨간 자켓을 생각하면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할머니와 나를 연결해주는 강박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플로리다의 모든 백화점을 돌며 그 자켓을 찾아 헤맸다. 그건 반드시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어야 하고, 방수가 되어야 하고, 모자는 탈부착이 가능해야 하고, 전체적으로 적당히 점잖아 보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고루해서는 안됐다. 너무 야한 빨간색은 당연히 안되지만 그렇다고 칙칙하거나 거무스름해도 안됐다. 옷감은 얇아야 하지만 사각거리는 소리가 많아 나서는 안되고 살에 닿는 느낌은 부드러워야 했다.
찾아다닌지 3일째쯤 되는 날, 나는 우리가 그 자켓을 영원히 찾지 못 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못난 다른 자켓을 거치면 거칠수록 할머니의 머릿속에 있던 그 옷은 점점 더 완전한 이상이 되어서 웬만한 건 그 발치에도 따라갈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쫓아가는 중이었다.
자기 주변의 모든 걸 통제해야 직성이 풀렸던 할머니가 저렇게 무력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서,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식증과 폭식증에 시달렸던 20대 때의 내 몸이 생각났다. 이제 하루 종일 포도 3알로 연명한다든지, 케잌 하나를 통째로 다 먹고 토해버린다든지 하던 때로부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의 몸도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던 때가 있었고, 그때의 난 정신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려 내 안에 갇혀버린 상태였다.
내가 왜 그렇게 살을 빼는 것에, 먹지 않는 것에, 혹은 내 기본적인 욕구를 통제하는 것에 집착했었는지 아직도 설명하기 어렵다.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과정이 몸무게 숫자로 객관화 되어 카운트 다운되고 생리가 끊기고 부정맥이 날뛰어도, 옆구리 위로 튀어나온 갈비뼈를 만지며 깊은 만족감을 느꼈었다. 살을 빼는 건 처음에는 소정의 목적(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든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샌가 그런 건 사라져 버리고 내가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과 거기로 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사실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결승선 도달하기만 하면 나는 완전하고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하지만 절대적인 믿음에 사로잡혀서 거식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승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빨간 자켓처럼,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몸은 중요한 게 아니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를 바짝 뒤쫓는 그 상태가 내가 유일하게 아는 존재의 방식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우리가 평생 끌고 다녀야 하는 우리의 몸은 가끔 우리 자신으로부터 너무나도 이질적인 무언가가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의미를 찾아보고 싶지만 식이장애나 알츠하이머같이 인간이 겪는 부조리에 가까운 정신질환에는 뚜렷한 이유나 교훈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단지 할머니가 고통 받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사진가 크레딧: Jorge Garcia, @photosbyjorg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