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엄마랑 가자"
졸업이 다가오는 학년을 맞고 있었다. 진 빠지는 학기를 보내고 나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나라의 냄새(음식)와 문화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벼르던 유럽여행 이야기를 밥상에서 꺼냈다. 엄마는 나를 미묘하게 오래 응시했다.
침묵을 깨려는 마음과 진담인 마음 반반으로 "나랑 엄마랑 가자."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고민하는 척도 없이 진심이냐고 엄마가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내 통보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반응했다. 가족여행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각 오래 벼르던 마음으로 유럽으로 여름에 떠나기로 약속했다.
엄마는 캐리어를 갖고 간다고 했지만, 나는 무조건 배낭이었다. 엄마는 캐리어가 너무 작다고 했지만 나는 별수 없다고 했다. 넌 옷을 갈아입지 않을 계획이냐고 엄마가 나에게 쏘아 올렸다. 나는 최소한의 짐으로 경험을 중시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고, 엄마는 그와 더불어서 기록의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래도 여행 하는데 모자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엄마의 주장은 받아들였다. 언제 또 너랑 갈지도 모르는데 사진 많이 남겨야 하는 말을 모자 주장 뒤에 붙여 말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각 다른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쌌다.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경비였다. 한정된 재화를 적정하게 사용해야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 놓은 돈에 한계가 있었고 주택청약으로 들어 놓았던 통장도 말없이 해지했다. 어차피 집은 살 수 없을 거고 여행은 가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에는(지금은 후회하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경비는 각자 지불하기로 했고 엄마도 빠듯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할 것들을 결정했다.
항공료는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선택한다. 숙소는 편안하고 안전해야 한다. 가능하면 교통도 편리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시끄러울 수 있으니 가격대가 맞는 호텔로 알아본다. 음식도 반드시 먹고 싶은 것은 먹지만 예산 안에서 해결한다. 최대한 걷는다. 무엇보다 걷는다는 것이 엄마와 통했다. 많이 걷고 길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각 나라의 문화를 보고 싶었다. 관광코스로 만들어진 길만 걷고 싶지 않았다. 각 나라의 꼭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 지점을 연결하는 것은 되도록 걷는 것으로 하기로 약속했다.
경비에 맞추기 위해서 중국으로 경유한 것이 나에게 오랜 공복을 줬다. 엄마는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체력관리가 이번 여행의 핵심이라고 나에게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것 때문인지 엄마는 어디서나 잘 먹었고 잘 잤다. 반면에 나는 먹지 못했고 자고 싶어도 깨어있었다.
도착한 히드로 공항은 영드에서 봤던 영국이었다. 날씨가 찌뿌듯했고 사람들은 시크해 보였다. 히드로 공항의 작은 터미널은 예상한 것보다 작은 규모여서 신선했다. 그보다 영어권 나라에 처음 방문하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영어로 된 세상이 놀라웠다. 간접적으로 영상을 통해 경험했던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에 복잡한 감정이 얽혔다.
어쩌면 나보다 더 엄마가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끄는 나를 엄마가 따라왔다. 한 발 뒤에서 나를 따라 걸었다. 한 발 뒤에 걸어오는 엄마는 우리 여정에서 나의 역할을 일깨웠다. 정신을 차리고 시내로 나가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서 다른 터미널로 향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예약한 호텔에 가고 싶었고 좀 씻고 잠에 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