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어
아직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다행히 실내로 들어왔다. 어릴 때 대영박물관이라고 듣기만 했었던 영국 박물관 높은 천장을 봤다. 손에는 따뜻한 플랫화이트가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오는 줄은 길지 않았지만 테러 사건 때문에 신분증 검사와 소지품 검사를 해야 했다. 배가 나온 아저씨는 가방의 지퍼를 다 열어 달라고 말했다. 여권과 파운드, 스마트폰을 등 가방 안에 들어 있는걸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내 눈을 봤다. 검사를 먼저 마친 엄마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 소장품이 너무 많고 빌려도 많이 듣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부렸다. 어쨌든 빌려달라고 했다. 한국어 가이드가 녹음된 오디오를 들고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온 걸까. 엄마는 앞서 걸었다. "어디를 먼저 가야 해?" 물어보고 나서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도서관이 내 앞에 있었다. 오래된 책과 조각 작품이 영국 답게 정갈했다. 멋있는 것도 잠시 었고 많은 소장품 때문에 지쳐갔다. 나는 놀라움이 줄었고 의자를 보면 앉았다. 영국 박물관은 크고 정말 많은 역사가 축척되어 있었다. 새로운 정보가 물리적으로 계속 접근했다. 다른 층에 오르기 전에 나는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일본관 가까이에 한국관이 있었다. 내가 사는 나라를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하는구나 생각했다. 일본 소장품이 더 많은 것에 질투를 해야 할지 다른 감정을 가져야 할지 몰라 생각을 유보했다. 엄마는 한국관을 반가워했다. 그리고 그렇게 놀라고도 다시 놀라워했다. "우리나라 작품을 다른 나라에서 봐도 아름답지."라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우리는 함께 한국관을 걸어 다녔다.
오래전 만들었다던 미라가 내 앞에 있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미라가 보였다. 투명한 상자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두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감상하는 사람. 감상할 수 없는 분위기 었지만 그래도 미라는 놀라웠다.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의 몸이 내 앞에 누워 있기도 서 있기도 하다니.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오래 남아있고 싶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계속 뒤처졌다. 메인 통로가 아닌 곳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고 통로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할 일은 그래도 엄마를 계속 따라다니는 일이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눈으로 계속해서 찾았다. 나중에는 엄마 뒤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어디에 집중하는지 보면서 엄마 등을 찍었다. 우리는 그리스 문화를 보면서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비슷한 그릇들을 유리 너머로 볼 수 있었는데 헤라클레스 이야기를 곁들인 그릇도 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문화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종종 밤에 그 동영상을 봤다. 엄마 등이 나오고 기껏해야 옆얼굴이 나오는 동영상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 기억은 하는 거냐면서 내가 엄마를 놀렸고 엄마는 모든 게 신기했다면서 더 크게 웃었다. 박물관 동선을 따라서 모든 것을 봐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동선 밖으로 나와서 카페로 갈 수도 있었고( 입구와 가까운 곳에도 카페가 있고 중간에도 있다.) 앉아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박물관에서 나올 수도 있었다.
우리는 오늘 먹지 않으면 못 먹을 음식을 먹는 것처럼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방 지친 나는 더 배고팠던 엄마를 따라잡지 못했다. 갈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명한 소장품이 나올 때마다 대단한 걸 아는 사람처럼 엄마에게 말했다. 더 중요한 걸 보는데 힘을 쓰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보면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잔소리를 했다. 괜찮은 딸이 되고 싶었을까.
잔소리를 하는 중에 마음 어딘가 불편했다. 불편한 게 뭔지 모른 채로 일정을 이어갔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서로의 속도에 맞췄다. 앞서가던 엄마가 나를 봤고 비가 그친 길을 걸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소장품이 많을 수 있는 거냐면서 침략의 역사를 짚었다. 그 말에 그래도 무료로 개방하는 건 좀 놀랍다고 엄마가 답했다.(영국의 박물관 미술관은 무료가 많습니다. 그 점이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