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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없지만 러쉬 냄새나

일어나 봐 빵 냄새가 나

by 오주황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을 때 공항버스가 시내에 도착했다. 정류장 주변으로는 유동인구가 많았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로 향했다. 엄마와 나는 오이스터 충전기 앞에서 잠깐 멀뚱 거리며 서 있었다. 옆에 미국 관광객이 오이스터 충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걸 구경했다. 한국에서 카드 구입 정보를 보고 왔지만 현장에서 보는 게 더 이해가 빨랐다. 오이스터 카드를 사려고 파운드를 꺼내면서 조금 긴장했다. 다행히 두 번만에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했다. 중국에서보다는 긴장이 풀린 채로 핌리코 역으로 갔다. 역에서 도보로 10분 안으로 갈 수 있는 숙소를 쉽지 않게 찾았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호텔은 한산했다. 영국 같지만 조금 촌스럽고 뭔가 허술해 보이는 로비에서 직원이 자본주의 미소로 두 동양인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는 여권을 받아가면서 한국 주소를 영어로 쓰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여행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했는데 스마트폰에 적어 놓은 것은 여행지의 호텔 주소밖에 없었다. 구글 맵에 가고 싶은 곳에 깃발을 꽂아 놓기까지 했지만 집주소를 쓰라니 순간 당황했다. 우리 집 주소를 내가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영어로 갑자기 쓰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갑자기 멈췄다. (한국에서 산 유심을 미리 공항에서 바꿔서 끼워 넣기는 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영문으로 주소 검색하기 기능을 사용했다.) 예상하지 못한 작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체크아웃은 나가는 날 오전 중에 하면 된다고 직원과 확인하고 관광지도를 받고 돌아섰다. 안으로 들어가는데 작은 바가 나왔다. 그리고는 막다른 벽을 보고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위치해 있나요?" 직원은 아주 잠깐 멈짓 하더니 여긴 엘리베이터가 없다면서 계단은 이쪽이라고 친절하게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멀찍이 떨어진 엄마가 다가왔다. 나는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미안한 기색으로 나를 봤다. 그때도 나는 웃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랐다. 바닥이 움직이는 것 같고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별일 아니었지만 몇 시간의 긴장이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숙박료는 파리보다 비쌋다. 나는 쇼디치의 힙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만큼의 여행비용이 없었다. 숙소를 잘못 고른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거면 비용을 더 지불하고 좋은 곳으로 갈걸. 설마 화장실은 괜찮겠지. 분명히 괜찮다는 후기를 확인하고 심사숙고해서 고른 곳인데.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고 카드키를 대는데 러쉬 냄새가 났다. 기분이 조금 풀어지면서 엄마를 봤다. "엄마 엘리베이터는 없는데 러쉬 냄새나." 엄마는 시큰둥했지만 나아진 내 반응이 안심인 모양이었다.


오래 못 먹었던 나를 위해 우리는 씻고 밖으로 나왔다. 주택가가 모여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눈에 보이고 열러 있는 상점은 케밥 집 하나였다. 먹을 수밖에 없는 좋은 냄새가 났다. 좁은 케밥집에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은 없었고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숙소에 앉아서 케밥을 오픈하고 먼저 소다를 마셨다. 이렇게나 맛없을 수 있다고? (거 케밥사장 씨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우린 먹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말도 안 나왔다. 웃으면서 안 먹는 게 좋겠다고 끄덕거리고 일회용 상자를 접었다.


너무 추워서 담요를 가지러 계단을 여러 번 올랐다. 꿀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에 들었다. 달콤하게 자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깨웠다. "나는 이미 씻었어. 우리 조식은 언제 먹으러가? "옷을 입고 엄마는 기대하고 있었다.


20200905.jpg 나는 앉아서 오래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많은 것을 먹었다.


어제도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오늘이 왔다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오기 전에 먼저 조식을 먹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조식은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야 하는 지하공간에서 제공했다. 세 번째 조식 입실자로 기록하고 자리를 잡았다. 내 입에 맞지 않는 영국 빵을 엄마는 맛있다고 했다. 요거트도 우유도 다 마음에 든다면서 빠지지 않고 먹어봤다. 일회용 쨈도 다 발라서 먹어보고 커피도 챙겼다. 달라진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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