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눈썹만 보겠어?"
안경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 찍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불편하기도 하고, 때때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고 싫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패션 아이템으로 안경테만 쓰기도 하지만, 나에게 안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력이 좋지 않아 두꺼운 렌즈를 끼워야 하고, 둥근 얼굴에 안경까지 더해지니 더 커 보이는 느낌도 든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콘택트렌즈를 끼면서, 안경에 가려졌던 크고 또렷한 눈과 이목구비가 드러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작년에 오른쪽 눈 망막 박리 수술을 받은 이후, 다시 렌즈를 끼기가 왠지 망설여졌다.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20년 넘게 렌즈를 착용하며 혹사시킨 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선택을 해주고 싶었다.
렌즈를 끼고 있을 땐 모든 것이 내 세상처럼 환하고 편리했다. 화장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었다.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바르고, 눈썹을 그릴 때도 비율을 맞춰가며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런데 안경을 다시 쓰면서부터는 거울에 얼굴을 거의 바짝 들이대야 하는 탓에 대충 그리게 되었고, 덕분에 화장 시간이 단축되는 의외의 장점이 생겼다. 눈썹이 조금 삐뚤어졌으면 내려온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되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내 눈썹만 보겠어?"
액세서리도 자연스레 최소한으로 줄었다. 예전에는 크고 화려한 귀걸이나 목걸이를 즐겨 했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귀걸이 하나만 하는 게 익숙해졌다. 안경과 함께 있으면 너무 과해 보이는 것 같고, 무엇보다 굳이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안경을 쓰면서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대신, 내면을 더 단단하게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본질을 다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모습에 쏟던 에너지가 점차 내면으로 향하고, 꼭 필요한 것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덜 신경 써도 되는 것들은 내려놓고, 진짜 중요한 것에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쏟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을 경험하는 어른들을 보며, 가까이 있는 것보다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면 흐릿하고 불분명하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 오히려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내게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런 변화를 알려주는 매개체가 된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불편하고 싫기만 했던 안경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갈 준비를 하려 한다. 어차피 내 인생에서 한동안 동행할 존재라면, 마지못해 쓰는 것이 아니라 멋진 파트너십을 맺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안경이 내게 준 새로운 시선을 받아들이며, 나 자신과도 더 좋은 관계를 맺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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