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으로 살아가는 첫날
낮아진 전세금,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정원 풍경, 넓어진 집, 환하게 쏟아지는 채광, 이런 모든 좋은 조건을 뒤로하고 양평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새 삶을 사는 것 같은 설렘은 이사 당일이 되자 묘한 불안함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살던 집을 정리하는 일, 이사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오고 가는 거액의 금액들, 아직은 정리되지 않은 낯선 침실과 공간까지, 모든 게 불안했다.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설렘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되지 않았다. 괜한 짓은 한 것은 아닌지 후회와 걱정이 오고 가고, 머릿속에는 막상 모든 게 좋아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과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 펼쳐졌다.
'오래된 집이라 공사비가 더 들 거야. 정원을 잘못 관리해서 보상금만 커지면 어쩌지? 더 큰 목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생각만큼 생활습관도 변하지 않고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양평집에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시야를 좁게 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해결방법을 찾는 내가 있었다. 애써 다시 마음을 정돈하고 희망찬 미래를 상상해 보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불안하고 심란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이사하고 환경이 낯설어서인지 3일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통창이 있는 거실로 향했다. 안개가 자욱한 산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귓가에 톡톡톡톡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녘에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고즈넉하다.
문득 걱정만 하느라 못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내가 지금 무엇과 함께하고 있는지 잊은 건 아닌지. 꽉 들어찬 생각으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비가 온 후 맑게 개어가는 하늘과 나무 사이사이로 뛰어노는 새들과 장관처럼 펼쳐진 운무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들이었다.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는데도.
'아, 걱정이란 사람을 이다지도 좁게 만드는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낯설어서 두려워하는 자신을. 나를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구나, 그래서 편안하지 않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진실 하나를 이렇게 마주했다. 낯설어 두려워하는 자신을 외면했구나. 맞다. 낯설고, 두렵다. 나도 이런 삶이 처음이고, 이 공간도 처음이고, 이런 생활환경도 처음이다. 다독다독 아이를 다독이듯이 한참을 다독였다.
아침 6시 반에 일찍 출근길에 오르며 알았다. 변화를 대할 때면 내가 하는 습관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기존의 삶이 좋았던 나빴던 상관없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저항하는 마음의 방식이었다. 온갖 시나리오가 재생되고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눈앞에 보이는 선택을 하고.
다시 한발 물러난다. 아직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른다. 익숙하지 않은 출퇴근 길도, 먼 거리도, 낯선 이웃도, 어떨지 아무것도 모른다. 낯설음에 불안한 내가 내뱉는 걱정의 생각들을 들으며 시동을 켰다.
그리고 평화롭게 노니는 벌들과 풀벌레 소리와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새벽녘의 새소리를 향해 인사한다.
"안녕, 이제 이사 왔어. 너희도 내가 낯설겠지만 나도 낯설고 두려워. 하지만 좋은 관계를 맺자. 천천히 알아가자.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2023년, 시골에서 마주한 낯선 두려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