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잡초..! 저기도 잡초..!
소일거리가 생겼다. 바로 잡초를 뽑는 일이다. 처마 끝에 캠핑 의자를 두고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도 갑자기 앉아서 잡초를 뽑는다. 마당을 거닐면서 꽃을 보고 나무를 보다가도 앉아서 잡초를 뽑는다. 그렇다. 나는 양평에서 잡초봇이 되었다..!
하지만 잡초를 뽑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먼저는 매의 눈으로 잡초와 잔디를 구분하고 잡초라는 것이 판명이 되면 뿌리째 뽑아줘야 한다. 보통은 잔디와 확연히 구별이 되지만 어떤 잡초는 잔디와 비슷하게 생겨서 잔디 속에 몸을 숨기고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간다. 하지만 어디! 이제 갓 양평 군민이 된 나는 심혈을 기울여 숨은 잡초도 잘 찾아낸다.
사실 잡초봇이라 해도 매일같이 잡초를 뽑는 것은 아니다. 출근도 해야 하고 주말에는 놀아야 하니까. 정원사 아저씨를 비롯해 다른 이들의 많은 도움도 받고 있다. 하지만 틈틈이 소일거리를 하듯이 정원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일은 내 즐거움이 되었다.
웃기게도 잡초 덕에 SNS만 하염없이 보면서 하루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일상에서 벗어났다. 매주 스크린 타임이 줄었다고 아이폰이 보고를 해온다.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 아주 큰 변화는 아니지만 서서히 줄어드는 스마트폰 중독도 좋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이 줄어드는 것도 좋다.
피지를 뽑듯이 쏭쏭 잡초를 뽑을 때면 쾌감이 든다. 그래서 중독이 심하다. 잡초를 한 번에 뽁하고 뽑았는데 긴 뿌리와 숨겨진 다른 본체(?)까지 드러날 때면 더 즐겁다. 잡았다! 요놈! 그렇게 한번 앉으면 나도 모르게 짧으면 1시간 길면 3시간을 앉아 있게 된다.
잡초를 뽑는 일은 보통 벌레 때문에 멈춘다. 무슨 벌레인지는 모르겠지만 모기도 아닌 것이 잡초를 뽑을 때면 나타나 문다. 마치 뽑지 말라는 듯이.
그럴 때면 혹시.. 잡초와 벌레의 그린라이트?! 이런 시답잖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둘만의 평화로운 한때를 무자비한 손들이 들어와서 파헤치고 거덜을 내니 벌레는 화가 나는 것이다. 시위를 하듯 손을 때리고 물어도 보지만 거대한 손은 멈추질 못한다. 이런 슬픈 스토리를 생각하고 있자니 잡초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사람이 정하는 '쓸모의 기준'이 아니라면 잡초에게는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대충 잡초라는 이름으로 여러 풀과 꽃들을 거칠게 묶어버리고 박멸하듯 없애버린다. 그들에게도 땅과 바람과 햇빛은 공평하게 주어지고 뿌리내릴 생명력과 권리가 있음에도.
하지만 모든 쓸모의 기준에 현혹된 인간인 나는 잡초를 뽑을 수밖에 없어 사과를 한다. 내 집도 아닌데 이대로 우거지게 두었다가는 문제가 될 테니까. 부디 사람 안 보이는 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살기를!
잡초를 뽑다 보면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흙과 풀이 만들어낸 향기에 마음이 취한다. 아.. 좋다. 흙냄새를 맡고 살 수 있는 삶이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거 하나 없어도 삶은 이런 기회도 준다. 흙과 더불어 이렇게 큰 마당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나의 인생이 그저 고맙다. 잡초와 더불어 사는 인생도 기쁘다. 잡초와 함께한 망상들은 결국 감사함으로 끝이 난다.
2023년 9월 잡초를 뽑다가 하는 망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