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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Nov 20. 2021

In the middle

나는 오늘도 일상을 산다


“어중간해서. 그게 문제야.”


고3 시절 수능을 앞두고 본 모의고사 점수를 본 선생님의 말이었다. 매달 한 번씩 있었던 모의고사에서 점수와 등수가 발표되고 상담을 위해 교무실을 찾았었다. 국영수를 비롯해 사회, 과학 등 모든 영역 점수를 본 선생님은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네 큰 문제는 모든 점수가 고르게 안 나와서 문제를 짚어내기가 어렵다.”


선생님은 내 문제점을 그렇게 짚어냈다. 특별히 잘하는 과목도 없고 특별히 못하는 과목도 없는 게 문제라고. 더 이상의 조언은 없었다. 선생님도 난감했던 탓이겠지. 나도 그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교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전교 1, 2등을 할 만큼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또 특별히 뒤처지는 학생도 아니었다. 특별히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자리로 돌아와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인 서울 대학은 갔지만 대학도 어중간했다. 특별할 수 있는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재수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온몸을 내던질 자신도, 그걸 해낼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다.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경영학과가 인기였던 그 시절에 마케팅이 재밌을 것 같아서 광고와 경영을 복수 전공했지만, 특별히 머리에 남을 만한 걸 배운 기억도 없었다. 남들 다 목맨다는 영어점수 하나 없이 사회에 내던지듯 나왔다. 내 특별함을 증명하는 길은 성실함과 생각보다 일을 잘한다는 그 단 한 마디 말뿐이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사회의 부조리나 부당함을 이야기하기에는 자리 잡는 게 우선이었다. 동시대의 내 세대가 겪어야 했던 아픔이나 사회의 아픔보다는 일에 매진했다. 그나마 좋아했던 일을 선택했지만 그 일이 딱 내 적성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28살 쯤되니 하나둘씩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까지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 친한 친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청첩장을 돌렸다. 나는 그대로 사회생활을 했다. 성실함이 특별함이었던 나는 어떤 업무도 무난하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특별히 못하는 일도 없었지만 번득이는 창의력으로 주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직 핸드폰이 애니콜이었던 시절, 어느 날 아이폰이 나왔다. 시대는 온라인과 모바일로 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떠들기 시작했다.


기존에 내가 했던 방식이 저물고 미디어는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역행하고 있다는 말들이 떠돌고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예전처럼 사회를 통제하려 든다고도 했고 내가 기억도 하기 전에 활동했던 정치인들이 메인으로 부상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들이 생겨났고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했던 기업에 누군가는 백으로 들어왔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꾸준히 사회생활을 했다.


그에 도피하듯이 미국을 가봤다. 미국을 간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유학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대학을 나왔던 나는 나보다 네대엇살 어린 후배들이 어학연수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들 입에서 나온 어학연수 시절은 내가 환상을 가질만한 이야기들이었다. 아직 취업의 고통과 낭만 사이에 어정쩡했던 대학시절에 나는 겪어보지 못했던 여유들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미국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글로벌한 경험을 나도 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조금 쉬고 싶었다.


그렇게 떠난 미국에서 나는 어중간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5년이라는 직장생활을 했고 어느 정도 그 일이 익숙해지던 때였다. 낯선 땅에서 나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신분 자격도 없는 외국인 노동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사회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기엔 역경이 더 많았고 그대로 한국을 돌아오기에는 외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아쉬웠다.


3년이라는 어중간한 시간 동안 적당한 영어를 배웠고 적당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남쪽 끝 어느 바다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돌아올 때쯤엔 광화문에 촛불이 밝힌 불빛이 한가득이었다. 한 시대는 그렇게 가고 있었고 나는 돌아왔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 모두 나에게 물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느냐고.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특별한 신념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고. 나는 웃으면서 언제나 그런 건 아니라고 말을 했다.


나는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했다. 마치 모두가 어중간한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냐고 물어오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을 지나는 시점, 사회에서 만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꼰대 막차 세대가 우리라고. 아직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지만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낯선 신입들의 문화를 다는 이해 못 하는 그런 어중간한 세대. 야근을 밥 먹듯 했고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하면서 열정을 시험당했지만 그 부당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세대. 하지만 온전하게 개인주의적이지도 못했던 세대.


오늘 창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다. 


나는 아직 백수다. 잘해오던 회사를 때려치웠다. 재수를 하지 못했던 그 시절 그 마음처럼. 나는 이 사회에서 1등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름대로 많은 경험을 하고 다시 사회로 돌아와 괜찮은 외국계 회사를 들어갔다. 치열한 경쟁과 정글 같은 회사에서 내 마음이 지쳐버렸다. 더 밑으로 떨어질 자신도 없지만 다시 부장, 이사의 직함을 달고 경쟁에서 이겨 특별한 위너가 될 자신이 없었다. 다시 어중간함을 선택했다.


쏟아지는 빗속에 어중간했던 나 자신, 특별함이 없이 나이 들어 버린 나와 같은 인생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위 평범하다고 말하는, 결혼도 하지 못했고 대단한 성공도 하지 못한 30대 후반의 삶에 대해. 독특한 취향도 재능도 키워오지 못했던 삶에 대해. 이제 어떠한 변명으로 나의 존엄을 세상에 이야기할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모든 말이 핑계 같기만 하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한편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이제 나는 내 얼굴, 지위, 나이에 걸맞은 무엇을 보여줘야 할 시기에 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인가 된다는 것은 때로는 나만의 힘으로는 힘들다. 성공은 혼자서 이뤄내기 힘들다. 좋은 동료, 좋은 기회, 좋은 여건과 좋은 운의 하모니 같은 거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구축할 수 있는 의미에, 삶의 방식에 고민한다.


지난 시간 동안 내 개인이 소중하다 생각하면서도 조직의 논리를 거부하기 힘들었다. 멋들어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의 어떤 부분이 희생되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도 나는 갑이 되지 못했다. 필요한 일, 급한 일, 중요한 일에 밀려버린 자아는 이제야 무의미를 인식했다.


이제 마흔이 더 가까워지는 나이. 나는 꿈을 꿀 수 있는가.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가. 흘러가는 비에 묻고 또 묻는다. 부모에, 회사에, 타인에 맞추며 무난하게 살아왔던 자아가 그 모든 것을 깨고 온전한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


그래서 매일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억눌려버린 자아가, 어중간하게 살아왔던 삶에서 내 목소리는 무엇인지 잊기 전에. 지금 흘러나오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처럼 ‘Gras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라고, 내게 이렇게나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누구나, 결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만년 과장을 하건, 성공한 사장이 되던, 루저가 되던, 위너가 되던 존재의 존엄에 대해, 특별하지 않아도 내가 여기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또 그럴 수 있기를 절박한 심정으로 되뇌어 본다.


어중간한 인생에도 지키고자 하는 존엄이 있다.


2019년 8월, 여름의 끝자락 비가 오는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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