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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Nov 20. 2021

명상 일기를 시작하다

나는 오늘부터 나와의 진정한 동거를 시작했다

요가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다되어 간다. 시작은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잔뜩 때가 끼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40이 되어 가건만 나는 온전히 삶을 한 순간도 살아온 것 같지 않았다. 가슴은 허전했고 언제나 혼자였던 것 같았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느 날 문득 원인은 내 안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나는 내가 버거웠다. 어렸을 적에는 병적일 정도로 내성적인 내 성격이 버거웠다. 타인을 동경하는 건 일상 같은 거였다. 인기가 많은 사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떻게든 극복을 해왔다. 다행히 유머감각이 있었고 눈치는 빠른 편이어서 많은 콤플렉스들을 극복해 오고 살아왔다. 하지만 두려웠다. 잔뜩 문제가 많은 나를 내 안 깊숙이 숨겨놓고 사회적 가면을 쓰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고 누군가와 관계가 너무 깊어지면 문제가 많은 나를 알아챌지도 모르다는 것이.


그래서인지 어느 날 깊은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여전히 상처가 많고 어리석으며, 예민한 나를 꾹 눌러 담고 살아온 나의 삶 37년에 지쳤고, 사회적 가면이 추구하는 '성공한 인생', '그럴듯한 사람'에 대한 끝도 없는 재촉에 나는 지쳐버렸다. 인생이 지긋지긋해지고 하루가 버겁다 느낄 즈음에 나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다. 처음 요가를 할 때 요가 선생님이 그랬다.


"요가는 비폭력을 추구해요. 그중 첫걸음은 자신을 향한 폭력을 멈추는 것입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잘못했다고 자신에게 꾸중하지도 말아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알아채 주세요. 지금 힘듦을 알아채 주세요. 그리고 해냈을 때 해낸 자신도 알아채 주세요."


나를 향한 비난을 멈추는 것. 첫 요가부터 나는 위로를 받았다. 문제가 많다고 애써 눌러버린 37살의 어리석고 부끄럽다고 비난받는 '내'가 마음 안에서 울었고,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하며 지쳐버린 사회인 37살의 나도 울었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한 것이 2년이 되었다. 요가를 하며 나는 수많은 시간, 수많은 순간 나와 재회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애씀 없는, 고통 없는 성장에 대해 배웠고 스스로를 비난하던 칼날을 거두었다. 어린 시절에 받아온 상처와 잘못된 가치관으로 예민해져 버린 나와 만나야 했고, 그녀를 안아줬다.


이제 나는 다시 시작선에 섰다. 수많은 안개가 걷힌 기분이지만 여전히 갈 길 먼 나그네로 돌아왔다. 사회생활은 나에게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일은 그 순간 가장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하면 된다. 또한 나는 생존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나는 생존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경험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더 이상 사회생활은 생존을 위한 전쟁터가 아니고, 삶은 나에게 주어진 버거운 짐이 아니다.


그 순간을 살다 만약 승진을 하면 고마운 일이고, 내 자리가 없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시작을 하면 된다. 2년간 요가가 알려준 깊은 가르침이었다. 간혹 요가를 하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자세가 잘못되기도 한다. 그때 나는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내 발 밑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실패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결과는 그뿐이다. 다시 발밑에서 시작하면 되니까.


이제 첫 요가를 하던 37살의 나를 지나 나는 39살이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요가에 이어 명상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삶에서 처음으로 나와의 진실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수줍게 소개팅을 하듯이, 아이를 키우듯이 나를 살피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보듬고 토닥여 준다. 그리고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삶'이란 이름의 사건들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내 앞으로 불려 나오고 나는 또 몰랐던 나 자신과 조우하고 멋있는 이별을 한다. 그렇게 지나가버린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에 진실하게 대하고 진실한 이별을 하고 있다. '삶'은 나에게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조금 더 내려놓고 두려움 없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좋든 싫든 관계없이 마주해 보기로 했다. 조금의 친절과 따뜻함을 담고서.


그렇게 나는 지금부터 나와의 진정한 동거를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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