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출근 준비
이번주 어떤 순간이 행복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염성 눈병에 걸려 일주일 내내 한쪽 눈이 붓고 아팠다. 수영을 쉬었고 저녁에 하던 러닝도 중단했다.
그 와중에 일은 많았다. 눈이 따가워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을 하고 하나씩 정리해 갔다. 늘 해오던 일상이 무너졌지만 무너짐과 동시에 다른 일상의 규율이 생성되었다.
수영을 가려고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 감사일기를 썼다. 평소에는 4시쯤 일어나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알람을 4시 반으로 맞췄다. 15분쯤 침대에서 꼼지락 거리다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시골의 새벽닭이 운다. 그것을 제외하면 고요하기만 한 시간이다. 노란색 종이에 한 글자씩 적는다. 처음에는 의도를 적는다. 모든 의도는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면서 영혼과 가슴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삶이란 멈춰 있는 순간에는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법인가 보다. 어떻게 이루게 될지 몰라도, 지금의 여건이 어떠한지에도 상관없이 이런 삶을 살겠노라 꿈꾸는 순간부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삶이 그 순간부터 흘러가기 시작한다.
먼 훗날 어떻게 원하던 삶을 이룰 수 있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 또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온 여느 사람들처럼 대답할 것 같다. 그 새벽, 그런 삶을 살겠노라 결정하며 남몰래 글을 적던 그 순간, 그 아무것도 이룬 것 없던, 아무도 아니었던 그 시절의 그 순간에 이미 이루었노라고.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의도적기를 마치면 감사한 것들 10가지를 매일 적었다. 매일 감사한 일이란 없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매일 감사한 일들이 생긴다.
매일 같이 아픈 눈은 어떻냐고 물어오는 나의 친구, 깜깜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새벽 6시에 어스름한 밝음을 느끼는 어느 하루의 순간, 옆집과 앞집에 봄 텃밭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갈아 놓은 밭으로 느껴지는 봄, 집 앞 정원의 나무에 움터오는 새싹, 그리고 자신만의 삶을 살겠노라 매일 같이 결정하고 노력하는 나 자신. 잊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감사함과 고마움을 적어 내려간다.
10가지의 감사함을 적으면 이제 그 말들을 음미하는 명상을 몇 분간한다.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는 이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감사함이란 나에게는 느낌이며 감정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르르르 설레는 느낌, 배 안쪽에서 퍼지는 것 같은 따뜻함, 뭉클함, 가슴이 열리는 느낌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은 이 작업의 백미다. 마치 춥고 배고픈 겨울 아주 뜨끈한 호빵 하나를 사서 반으로 가르고 첫 입을 깨무는 순간 온 입에 퍼지는 풍미, 달콤함, 기쁨,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과 같다. 허겁지겁 먹어 없애지 않고 아껴먹으며 맛을 음미하는 그 순간처럼.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한 내 주위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것에 사랑을 보낸다. 불편했던 사람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어제 받았던 불편한 전화, 상처를 준 사람, 원망했던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보낸다. 쉽지 않지만 해보면 또 어렵지도 않았다. 용서하고 용서받기를 되뇐다. 이 말을 되뇌는 것은 내 마음의 어떤 앙금이라도 풀어내어 나 자신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감사하는 시간은 열리는 시간이다. 매일 자유로움과 열림을 이 시간을 통해 경험한다. 그리고 매일 새벽의 열림은 하루를 지탱한다. 감사와 사랑 속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로 나아가고, 답답하게 막혔던 에너지를 풀어내고,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따뜻하고 달콤한 호빵의 단팥 앙금같은 소중한 마음을 채워 넣는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눈을 뜨면 세상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 있다. 삶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가 미세하게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별 것 아닌 차이가 매일 반복되면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을 가슴 깊이 신뢰한다.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오늘의 출근 준비를 마친다.
또 경이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미지출처: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