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윤 May 05. 2024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빗방울마다 고요가 담겼다.

비 내리는 아침의 고요함

고릉고릉 짝꿍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코를 고는 소리 사이로 빗소리가 청량하고 맑다.


어제 텃밭에 오이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모종을 심은 자리에 비가 내린다. 비는 땅에 풍요로움을 준다. 아마 어제 심은 모종들도 오늘 내리는 비를 맞으며 더 깊게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 옆에 자라고 있는 상추와 깻잎들도 마찬가지다. 4월 초에 심고는 벌써 여러 차례 수확을 했다. 매일 밥상에는 상추와 쑥갓, 깻잎이 오른다. 수확한 자리에는 새로운 잎들이 자라난다. 농부의 욕심보다 매일의 햇살과 물이 주는 풍요로움이 더 크다. 수확을 해서 먹는 속도가 생명이 자라나는 속도를 이기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텃밭 농부도 휴식하는 날이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혹여나 작물들이 마르지 않을까 새벽 출근 시간에 짬을 내서 물을 줬다. 어제도 한 여름 날씨처럼 해가 강해 더 뜨거워지기 전에 텃밭에 물을 줬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한 시름 놓는다. 자연이 알아서 물을 공급하니 농부는 여유로울 수밖에.


자연을 보고 최근에 배우는 점이 있다. 자연은 생각보다 정신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텃밭을 한다고 했을 때, 정원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연은 쉴 틈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쉴 틈마저 빼앗아 정신을 소진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짓이다.


봄과 여름의 생명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가을과 겨울이라는 휴지기가 온다. 햇빛이 쨍쨍하게 내려쬐는 한낮을 지나고 나면 열기를 식히는 밤이 찾아온다. 텃밭을 지나치게 크게 만들지 않는다면 여유롭다. 자연은 때에 맞춰 크고 때에 맞춰 싹을 틔우며 때에 맞춰 쉰다. 쉴 때에는 고요하고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다가 생장하는 시기에는 그 무엇보다 생기 있고 화려하게 커 나간다.


리듬과 흐름을 잃고 허우적 대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 낸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흐름을 타는 일. 기다려야 할 때에는 쉬고 때에 맞춰 일을 해야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일을 하는 것. 때에 맞춰 생장하고 때에 맞춰 죽음을 맞는 일. 모든 흐름에 맞춰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최소의 에너지로 최상의 만족을 갖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더없이 고요하게 쉬어야겠다.




이전 06화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