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뛰노라면 만나는 생명들
하루 중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길 위에서 예기치 않게 생명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야외 달리기의 좋은 점은 '야외'에 있다. 길 위를 달린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과 자연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이 도시가 되었든 시골이 되었든 마찬가지다. 달리노라면 평소에는 인식도 못했던 바람을 느끼고, 날씨를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나무를 만나고 수풀을 만나고 강아지를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양평에 이사 온 뒤로는 예전만큼 빌딩숲에 둘러싸인 풍경은 보지 못하지만 매일 바뀌는 자연을 느끼며 뛰고 있다. 처음에는 집 앞을 뛰다가 이제는 차를 가지고 나와서 양수역에서 팔당역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는 코스로 바꾸었다. 바뀐 코스 때문인지 만나는 동물들도 다르다.
집 앞을 뛸 때에는 산과 강이 있어서 백로 같은 새도 보고 고라니도 봤다. 어느 겨울에는 눈 길 사이를 뛰는데 후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려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릴만큼이어서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낮은 언덕 너머로 고라니 한 마리가 뛰다 말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한 새벽녘에 사람이 나타날 거라 저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두 동물이 놀란 눈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기이한 상황.
그런데 그런 고라니를 보고 있자니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따뜻함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 지구상에 나만 존재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것이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라니 입장에서는 한 겨울을 힘들게 나고 있는데 태평한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인 나는 그곳에서 버티며 살아주는 고라니가 고마웠다.
고라니나 백로처럼 시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동물들 외에도 고양이나 강아지 같이 친근한 생명들도 간혹 만난다. 자연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백로나 고라니보다 이 두 동물들은 어쩐지 애처롭다. 그래도 고양이는 조금 낫다. 수풀 사이를 당당히 걸어가는 검은 고양이를 볼 때면 '그래 너도 호랑이와 같은 과지!' 이런 기특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강아지는 다르다.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을 탄 티가 난 애완견들이 길거리를 방황하는데 대부분 꼬리가 내려가 있고 위축되어 있다. 어쩌다 나 같은 낯선 이들을 마주하면 경계심을 드러내며 사납게 쫓아온다. 나는 그런 모습에 안타까우면서도 물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해치지 않아요.'라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예민하게 다가왔던 강아지들도 실제로는 커다란 내가 무서웠는지 기세를 한 풀 꺾은 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다. 그러면 나는 이 강아지에게 어떤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강아지가 사라져 버린 길 위를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온다.
그리고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길들여진 것들이 버림받을 때에는 온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아픔을 겪는 모양이다. 길들여지는 동안 내 세상이었던 것들이 이별하는 순간 모두 사라지고 낯선 세계로 벌거벗은 채로 내동댕이쳐지는. 사람인 나는 누군가의 관계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언제나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겠다 생각하는 동시에 그렇지 못한 동물을 길들일 때에는 동물이 떠나는 것을 보는 순간까지 사랑하자고 마음먹어 본다. 예전에는 나보다 먼저 떠나는 반려 동물이 안타까워 기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길 위에서 만난 강아지를 보자 나보다 먼저 떠나는 것을 봐주는 것이 책임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 고라니, 고양이, 강아지처럼 네 발 달린 동물들 외에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것은 새들이다. 종류도 각기 다른 새들은 저마다 느낌이 다르다. 백로나 두루미와 같은 새들은 어쩐지 위엄이 있고 고고해 보이고 까마귀는 영리하다. 새까만 몸에 새까만 눈을 한 까마귀는 나보다 IQ가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날렵하게 날고 눈치도 빠르다.
가장 귀여운 것은 작은 새들이다. 참새 종류는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사실 참새 외에는 이름도 잘 모르겠다. 작은 새들은 무리 지어 다닌다. 혼자 있는 새들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꼭 몇 마리가 같이 다니는 것만 눈에 띈다. 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종 거리고 뛰어다니면 그게 정말로 귀엽다.
어느 날은 다 뛰고 차에 타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정면에 보이는 난간 수풀에 참새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집을 지으려는지 종종 거리면서 나뭇가지를 물고 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무엇이든 주워서 집 지을 재료로 쓸 모양인지 빨대도 줍고, 누군가 버린 아이스크림 껍질 조각도 물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뛰어다닌다. 마음속으로 '플라스틱은 지지야!'하고 조언도 해보지만 차 안에 있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지 바지런을 떨며 뛰어다닌다. 그게 또 귀여워서 한참을 웃어버렸다.
길 위에서 만난 생명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영위하고 있었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영리하게 때로는 고고하게. 나는 이 생명들을 마주칠 때마다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뭉클하고 따뜻한 감정이 가슴을 데운다.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 더 죽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함께 우리 각자의 생 앞에 놓인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매번 조용히 기도한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