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경쾌하고 유연하게 사는 법
어렸을 때 송광사에 자주 놀러 갔다. 순천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봄, 가을 소풍 장소였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그 당시에는 절 화장실은 무서운 곳이었다. 덩그러니 직사각형 구멍을 뚫어놓고 아래는 낭떠러지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절에서 화장실을 갈 때에는 행여나 물건이라도 아래에 떨어뜨리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두려워하며 볼 일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절에서 화장실을 부르는 이름은 해우소(解憂所)라고 가르쳐 주셨다. 근심을 비워내는 장소라는 뜻이다. 휑하니 아래가 뚫려 있는 화장실이 무서우면서도 해우소에 담긴 해학적인 의미에 웃었던 기억이 있다. 배가 아플 때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일이지 하며 키득 거렸다.
‘삶의 해학과 웃음’을 교과서 한 줄로 배웠지만 살아가며 웃음이야 말로 근심으로 막힌 가슴을 풀어주는 최고의 방법임을 깨우쳐 간다. 심각한 얼굴을 하며 싸우더라도 웃음이 터지면 그 싸움은 끝이 난다. 하루 종일 심란하고 우울했던 마음도 친구와 시답잖은 대화로 웃다 보면 풀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런 걸 생각한다면 심각할 때 명약은 웃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0대에 친구 따라 굿판을 구경간 적이 있었다. 친구가 혼자 가기 무서우니 같이 가자고 부탁을 해서 나도 따라갔던 기억이 있다. 한 맺힌 귀신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하도 보아왔던 터라 따라가면서도 무서웠다. 귀신 붙는 거 아니냐며 소곤거리며 친구를 따라갔다.
의외로 우리네 굿판이란 웃음꽃이 만발했다. 무당에게 귀신이든 신이든 내리면 친구의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 첫 번째로 울음으로 해소한다. 서러웠던 과거 다 털어버리라 위로하고 시작되면 경쾌한 장구소리, 징 소리,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지고 노래가 시작된다. 내가 너를 도우러 왔노라, 여기서 풀어내어라 큰 소리로 소리치고 창가 같은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중간중간 다른 조상들이 들어오면 농담하고 장난을 쳤다. 장구를 치는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며 웃고 밤 중에 이어지는 굿은 해학이 넘쳤다.
그때 알았다. 우리는 웃음으로 삶의 모든 것들을 해소하며 살아왔음을. 예전에 한 교수님이 굿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어떤 섬에서 섬 마을에서 만선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큰 굿을 구경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20년 전에도 교수님의 연세가 꽤 되었으므로 아마 50-60년대의 일일 것이라 추정한다. 교수님은 그때 굿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어떤 해소의 기능을 한다고는 생각했다고 하셨었다. 그 말의 의미를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노래와 춤, 웃음, 해학이 우리의 정서를 타고 흐른다. 아니, 어쩌면 온 인류의 정서를 타고 흐르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노래와 춤, 웃음을 사랑하고 이것으로 때로 삶의 기쁨을 더 충만하게 누리고 슬픔과 아픔을 승화시킨다.
이번주에 읽은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많은 작가들은 삶의 가벼움보다는 무거운 면을 더 들여다보는 이가 많다. 류시화 작가도 한때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삶은 고통이라고 불교에서 말하지만 정작 그토록 많은 불상은 미소 짓고 웃음 짓고 있는 것처럼, 삶이란 괴로움에서 출발해 궁극의 웃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지 작가는 말했다. 생각의 무거움으로 짓누르는 시기를 지나 경쾌한 혼의 길로 나아가 삶의 기쁨에 머무르라고. 마치 새처럼 가볍게 말이다.
저번 달에 읽었던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초인수업> 책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식자가 되고 싶다면, (책에서 돈후앙은 식자를 지각의 한계를 벗어난 지혜로운 존재, 주술사 등과 혼용해서 썼다.) 자기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겨 도취되지 않고, 경쾌하고 유연해져야 한다고 했다.
삶이 가야 하는 길은 경쾌하고 유연하고, 깃털 같은 가벼움이 아닌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그 길이 아닐까. 삶이 나에게 말한다.아가야, 때때로 웃음이라는 삶의 해우소에 들려 무거움을 벗고 가벼워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주 마음껏 웃어버렸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모두 내려놓고 웃음으로 해소해 버렸다.
나의 글도 점점 더 경쾌하고 유연하게!
그렇게 삶의 기쁨으로 뛰어들 것이다.
@이미지: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