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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Feb 18. 2024

물속의 명상, 몸이 마음을 이끌 때

불안의 바다에서 새벽 수영으로 찾은 평온

어느 날 밤 직장을 그만두는 모습을 상상하다 밤을 새 버렸다. 당장 이번 달에 그만둔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아직 현실로 일어난 일도 아니면서 만약 회사를 관두고 이런저런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상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망상이 점점 깊어지더니 ‘그만 생각하고 잠이나 자자’고 다짐해도 말을 듣지 않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상상은 더 먼 미래로 향해 가고 급기야 백수가 되어 지금 있는 집도 다 팔고 지방으로, 시골로 내려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내 처지가 부담이 된다면 누구누구와는 관계를 정리해야겠다, 만약 그때까지도 돈벌이가 없다면 무엇을 팔고 어떻게 돈을 구해야겠다까지 망상은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두려워졌다. 가슴속에서 생생한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돈마저도 벌지 않는 나란 존재는 얼마나 쓸모가 없는가. 회사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 나는 얼마나 무력한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생각으로써 언어화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불안한 느낌으로 말했다.


내가 버는 돈이 나인가? 내가 버는 돈의 액수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머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잠재의식은 감정과 느낌으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직장을 잃은 나는 불안한 존재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직장이 없어 돈을 벌고 있지 않은 나는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서웠다. 실은 어쩌면 내가 그래도 이 정도 규모의 직장에 다니며 이 만한 액수의 연봉을 이 나이에 벌기에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은 하지 않지만 은연중에 가슴 아래에서 퍼지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은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잠인지 생각인지도 모를 불안한 망상과 같은 꿈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수영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여전히 복잡한 마음과 생각이 의식을 지배했다. 때로 생각을 따라가는 것은 이토록 위험한 여정이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복잡한 심정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드니 파란색 수영장 레일이 보인다. 그제야 생각이 망상이 되어 불안한 세상을 창조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수영을 했다.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입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숨이 차오른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땅기기 시작한다.


몇 번의 왕복 끝에 숨을 헐떡 거리며 레일 끝에 매달린다. 선생님의 구호 소리가 들린다. 다시 자유형, 접형으로 몇 바퀴를 돌라는 신호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저 몸을 움직인다. 몇 번이나 레일을 돌았는지 모르겠다. 깊은 호흡을 하고 전신을 움직이고 얼굴은 열이 올라 붉게 변했다.


50분의 수업 동안 지난밤의 망상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무엇이 중요한가? 피식 웃었다. 그래,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그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이렇게 살아있지 않나. 이렇게 숨을 쉬며 온몸의 피가 들끓으며 외치고 있지 않나. 여기, 나라는 존재가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기분이 좋아진다. 전신을 휘감는 열기가 모세혈관 곳곳까지 퍼진다. 거세게 뛰는 심장에서 발끝까지 혈액을 내보내고 있다. 활력을 느낀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잠시 잊었던 모양이야. 네가 여행자라는 것을. 익숙한 삶을 버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야. 두렵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하지만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야.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슨 삶이 내 앞에 펼쳐질까 궁금해하자. 무엇이 일어날지 기대하고 상상하는 거야. 두려움과 불안은 호기심으로 바꾸고 탐험을 떠나보는 거야.”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불안은 웃으며 떠나갔다. 불안은 호기심 많은 여행자를 꺼려하는 법이니까.


* 이미지 출처: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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