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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Feb 04. 2024

마음의 안식처, 지금이라는 케렌시아

안온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넓히기 위한 연습

왜 지금인가?


몇 년간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은 나만의 케렌시아(querencia)였다. 투우에서 소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장소라고 불리는 케렌시아는 안전하고, 편안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특정 장소나 영역을 뜻한다.


호흡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지금’이라는 케렌시아는 언제나 나를 구원했다. 


거칠게 생각하고 화를 내고, 짜증이 나고, 질투를 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마음이 혼란스러운 날에도 조용히 앉아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으로 돌아와 그 순간에 일어난 경험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란한 감정과 생각들은 가슴을 지나쳐 사라져 갔다. 


들뜬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에 들뜨면 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붕 뜨는 느낌을 느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자신감에 벅차오르는 감정도 그 순간의 일일 뿐이었다. 오히려 희망은 욕망과 열망이 되어 머릿 속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는 했다. 그럴 때에도 다시 현재로 돌아와 놓아줄 수 있었다.


지금이라는 케렌시아는 그런 곳이다. 바라보고 내려놓을 수 있게 공간을 주는 그런 곳. 호흡을 느끼고 그저 내가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낄 때 마음은 차분해졌다. 다 지나간다. 감정도, 생각도. 한때의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나는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며 그 경험을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숨 쉬는 순간마다의 행복>은 불완전한 인간의 순간의 행복을 찾는 연습이며 여정이다. 왜 이 순간인가? 왜 현존인가?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도 글을 읽으며 나도, 읽는 이도 차분하고 평화로워지는 경험을 나눠보고 싶었다.





줄 수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세계의 원칙


연재를 시작하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나는 가슴으로 평온과 감사함, 사랑의 에너지를 내보내는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주의 있게 살피고 현재로 돌아오며 매 숨 쉬는 순간마다의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방사하는 사람이고 싶다. 


최근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는 한다. 나의 의식은 무엇을 내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는 또 무엇을 내보내고 싶은가? 마음으로 삶을 오염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행복을 세계에 비추고 있는가? 


다수의 책에서 세계가 의식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양자역학부터 많은 고대의 지혜까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삶이란, 세계란, 내 의식을 비춰주는 거울이요 그림자다. 세상은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비추고 있는 것을 줄 뿐이다.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을 방사하고 있어야 행복이 온다. 즐거운 삶을 원한다면 내가 즐거워야 한다. 사랑받고자 한다면 사랑이 가득해야 받을 수 있다. 결국 줄 수 있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끌어당김이 가능한 근본 원리인지도 모른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미 되어 있는 것처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 그런 마음을 지속적으로 세계에 내보내는 것은 전략적이고 치밀하지만 따스한 지혜다.


따뜻하고 활기찬 하루의 삶을 비추기 위해 숨 쉬는 순간마다의 행복을 찾는다. 그 모든 순간이 모여 내 마음의 바탕이 따스함과 감사함이 되도록. 그리고 그 마음이 세상에 흘러갈 수 있도록. 


새벽 아침 운동이 주는 즐거운 활력, 힘든 순간에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누군가의 손, 겨울이 가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정원에 피어나는 작은 꽃, 피곤한 날의 따뜻한 샤워, 산책할 때 발견하는 반려견의 귀여운 엉덩이까지. 숨 쉬는 순간마다 그 행복하고 안온한 짧은 순간을 주의 있게 찾아내는 것. 


이 연재는 그런 순간마다의 행복감을 연습하기 위한 나만의 글쓰기이다.


@이미지 출처: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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