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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Oct 04. 2024

툭 까놓고 말해서 사장님도 그냥 동네 아저씨잖아요?

쫄지않고 사회생활 하는 법

영화 <베테랑>에서 좋아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서도철 형사가 오팀장에게 하는 “쫄지마, 쫄지마 늙은이 안 죽어~”라는 대사는 그 유명한 조태오의 “어이가 없네.” 대사보다 더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가끔 저도 두려운 상황이 되면 스스로에게 서도철 형상의 말투로 ‘쫄지마 늙은이 안 죽어~’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80년대에 태어나 전체 인생의 허리쯤에 해당하는 나이를 살아왔고 15년 정도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35년을 일한 전 직장 상무님에 비해서는 가소롭기 그지없는 경력이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이 보기엔 그야말로 늙은이 같은 경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 80년대부터 2024년까지 격동의 세월(?)을 겪어본 저로써 느끼는 점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체감입니다. 2000년 초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90년대에 학교 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체감상 권위주의가 지금보다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즈음에 저는 항상 쫄아 있었습니다. “야, 너” 해가며 일을 시키는 부장님들의 직함과 목소리에 쫄았고, “어디서 그 따위로 일을 배웠어?”라고 전화로 호통을 치는 (일부) 외부 업체 사람들에게 쫄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나를 평가하고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 상사였으며 권위자였습니다.  


15년의 세월 동안 깨달은 것은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대리, 과장님과 일하던 세월을 지나 상무님, 사장님과 일하는 일이 늘어나는 경력을 손에 쥐었음에도 그때보다 쫄지 않는 것은 그들도 이 직함을 다 벗어버리면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는 둘째 녀석 때문에 고민인 한 중년의 남성이 저의 상무님이었고, 다 큰 자식들 진로에 고민하는 사람이 또한 제 사장님이었습니다. 또, 호통을 치며 무섭게 하던 외부 업체 사람들도 다 똑같은 월급쟁이였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어쩌면 지금 입사한 후배들에게 저라는 사람이 껄끄럽고 무섭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수평화되고 자유로워진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요.


여하튼 만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쫄지마 젊은이~’라고 말해줘야겠네요. 15년의 경력을 폄하할 뜻은 없지만 15년과 1년 차의 차이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쫄지 않는 차이’라고나 할까요.


일이란 보통 상식선에서 이루어집니다. 제 일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하는 일을 신입이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변수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긴장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며 커가는 신입들에게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그 정도의 차이가 짬의 차이이지만, 그 차이가 실상은 크긴 합니다. 대충 왼손으로 처리하는 일을 누군가는 반나절이 걸린다면 결과적으로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닙니다. 그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그러니 쫄 필요 없습니다. 존중과 예의를 벗어던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만약 성공한 누구 씨, 업계의 베테랑, 권위로 찍어 누르는 아무개 씨 앞에서 자꾸 위축된다면 어차피 집에 돌아가서 술 한잔 마시면 그 사람도 얼큰하게 취하는 것은 똑같고, 동네에서 만나면 그냥 아줌마, 아저씨라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라는 이야기입니다.


면접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다 같은 사람입니다. 특별해서 으리으리한 책상 위에 앉아 내려다보듯 면접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간혹 최종 면접은 대표이사가 볼 때가 있습니다. 백수 시절이 3개월이 넘어가던 차여서 조금 절박해지려는 심정으로 면접을 봤었습니다. 쫄지 않기 위해 '나만 면접 보나! 나도 이 회사 대표 면접 보러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그저 한 인간으로서 느끼고 알아가자는 마음을 먹었더랬죠. 그랬더니 정말로 면접 자리에 앉은 대표가 평범한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우습죠? 권위라는 것은 '너와 나는 다르다.'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봤고 당연히(?) 합격을 했습니다.


여하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면접을 보든 중요 프로젝트 발표를 하러 가든 쫄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가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도 앞으로 40년 남짓 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쫄지마, 쫄지마 늙은이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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