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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Sep 30. 2024

아무 일도 아니어야 합니다.

그까짓 거!



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잠깐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최고급 호텔을 가면 마치 매일 일상처럼 그런 곳을 방문하는 사람처럼 마음에 위화감이 없어야 해. 그래야 그런 곳에서 일을 하든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든 해. 여기는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위축된 마음을 가지고서는 인연을 만들어갈 수 없어.”


물론 기억이란 왜곡이 있기 마련이라 사장님이 한 말 그대로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제 마음에 남은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살면 살 수록 배짱도 두둑해지고 두려움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사라졌지만 10대와 20대 때에는 소심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큰 벽으로 보였고, 무엇을 하든 긴장과 두려움으로 일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람 관계도 어려웠고, 사회생활도 일도 어려웠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도 스스로에 대한 메타 인지는 살아있었는지 상당한 불안과 긴장으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알아차리고 있었고, 때때로 슬픔과 함께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좀 더 막무가내로 살 수 있었다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살아가는데 두려움이 없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작은 실수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런 소심함을 벗어버리면 나의 인생도 날개를 단 듯 날아올랐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당연히 막무가내로 살았다면 아마도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이 지구라는 행성이 편안한 무대인 듯이 살았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10대와 20대의 예민한 날 것의 불안함은 그 후 20년 즈음 지나니 삶이란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부서져 내렸습니다. 크든 작든 실패하고 성공했던 경험들 덕에 두려웠던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고, 거대한 산처럼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낯선 것들은 두렵습니다. 해보지 않았던 것들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알면 편안합니다. 그래서 알면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말입니다.)


이제는 그때 꽃집 사장님이 하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익숙할 정도로 편안해야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그러려면 경험하고 또 경험하고 알고 또 알아야 합니다. 반복을 통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면 안에서 평이한 것으로 전락해야 합니다.


“숨 쉬듯 편안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요. 숨을 쉬는 것처럼 의식도 못할 정도로 익숙한 일은 편안합니다. 그러려면 반복해야 하고 반복하려면 일상의 루틴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처음에 운동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나가는 일이 발에 거다란 족쇄를 끌듯 하면 안 됩니다. 그저 하는 겁니다. 그 시간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요. 독서 습관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길렀습니다. (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삶의 방향성에 따라 책을 좀 더 지적 허세나 의무감이 아닌 일상의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읽고 싶었습니다.) 원래 읽기를 숨 쉬듯 하는 사람처럼 1분이라도 짬이 나면 유튜브를 보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나는 원래 심심하면 책을 읽지!라는 느낌으로요. 이런 식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매일 조금씩 해나갔습니다.


좋은 책은 두 번도, 세 번도 읽었습니다. 좋은 철학이, 마인드셋이 원래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장착하고 싶다면 반복해서 듣고 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하는 방식이 익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상을 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생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적극 활용했죠. 예를 들어 긴장 없는 편안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새벽에 명상을 하듯 그 사람과 편안한 웃음을 짓는 상상을 하고 가족처럼 허물없이 대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진짜 현실에서도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정말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언젠가부터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작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글을 평생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매일 쓰던 글도 어느 순간 쓰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하더니 인기가 없다는 자괴감마저 들더군요. (맙소사!) 그 후로 글을 쓰는 것이 내 안에서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에게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는지, 내 글이 영향력이 있을지, 누군가가 읽어줄 가치가 있는지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글이란 놈은 이런 생각들을 먹이로 위대한 전설 속 동물처럼 몸집을 불려 나갔습니다.


저는 날마다 저 높은 황좌에 올라와 고귀한 척 아래를 내려다보는 글이란 놈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내 안에서 위대한 신화가 되어 가슴에 이고 지듯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행복한 것은 글 안에서 자유롭고 싶어서이지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얽매이기 위함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편안한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글쓰기란 놈을 알아가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가며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닐 때 편안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글쓰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숨을 쉬듯 의식도 못한 채 글을 쓰고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낄 터입니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상상하고 또 상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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