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정윤 Oct 09. 2024

불안의 시대에서 웃으며 살아남는 법

불안의 반대말은 신뢰입니다.

이번 화부터는 <그래서, 어떻게 살래?>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사실 백수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어떻게 살 건데?’라는 물음에 매 순간 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즐거운 척, 모르는 척 해도 말이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답해야 하는 물음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불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나름 퇴사에 대한 준비는 오래되었습니다. 5년간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확신이 드는 순간에 행동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대로 될까? 그런 기회가 올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이런 불안이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그리고 먹고 살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더라도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아직 이것도 안되는데 다른 건 어떻게 이루지? 이렇게 놀면 안 될 텐데,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죠.


그럴 때에 불안을 대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간 나름 명상을 해오면서 얻었던 경험과 책이나 강연 동영상을 보면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실천 방법입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에게 긍정적일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하지 않는 척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실천한다는 것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둔다, 혹은 불안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알아차릴 뿐 판단, 분석, 평가 없이 우선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위 두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먼저 몸을 돌봅니다. 인간이 느끼는 느낌이라는 것은 몸이 주는 신호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좋지 않은 컨디션, 낮아지는 체온 등도 불안과 긴장의 느낌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자고, 잘 먹고, 운동합니다.


저의 경우는 매일 아침 뛰면서 밤사이 뭉친 근육을 풉니다. 타박타박 뛰기 시작하면서 밝아오는 찬란한 햇살, 두 뺨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낍니다. 몸에 열이 돌기 시작하면 폐로 들어가는 호흡은 깊어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에 마치 온몸으로 마주한 바람이 가슴에 흘러들어 가 소복이 쌓아놓은 부정적인 감정을 흩어놓고 빠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함께 온몸의 감각 기관에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새 고민의 크기는 줄어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흐르는 활력은 불안과 긴장의 마음을 상당 수준 낮추고 시야를 넓혀줍니다.


만약 몸을 돌보았고 몸에 에너지가 충분한데도 여전히 느껴지는 불안이 있다면 그때에는 그 느낌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이야기하는 생각을 지켜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생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은 다른 상태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각’이라는 지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각을 연습할수록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며 경험하는 나가 있고, 그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자각하며 관찰하는 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생각과 감정이 ‘나’가 아니고 내가 경험하는 무엇임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불안 그 자체가 되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나 사이에 공간이 생겨 불안을 지켜볼 수 있을 때에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 수준의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몸의 느낌을 그대로 느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일시적으로 불안은 왔다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삶을 신뢰하는 연습’을 합니다. 몸을 돌보고 불안과 함께 있어 주는 것과 함께 시시때때로 하는 연습입니다. 신뢰는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확신 없는 마음, 신뢰하지 않고 의심할 때 싹트는 것이 불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밥프록터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보냅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그런 삶을 살 때 나는 무엇을 느끼는지를 생각하고 그럴 때에 가슴속에서 진실하게 우러나오는 감정과 느낌을 충분히 느낍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위해 내었던 용기, 노력 그 무엇이 되었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애를 쓰며 살고 있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지구상에 태어난 생명의 한 존재로서 나 자신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원하는 의도를 충분히 이루며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믿는다고, 신뢰한다고 되뇝니다. 이때 가슴이 열리고 따뜻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순간을 충분히 음미합니다.

 

이 연습을 수시로 하는 이유는 잠재의식에 신뢰를 각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안과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더 자연스럽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가 그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험요소를 먼저 살피고 주위를 한 번 더 경계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죠. 자꾸 불안한 것은 뇌의 기본 세팅 값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특별히 더 부정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세팅 값에 경쟁 사회와 생존에 대한 압박감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불안을 활성화시킵니다. 아니면 어쩌지? 못하면 어쩌지? 도태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로요. 그럴 때는 다시 신뢰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작게라도 이루며 하나씩 해나가는 자신을 다시 믿어보는 겁니다. 이 작은 실천에는 위대함이 담겨 있습니다. 폭풍우 속에 작은 불씨 하나를 살려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비처럼 퍼붓는 감정과 생각 사이에서 영혼이 두려움 없이 불태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불씨를 키워내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약 퍼붓는 자기 비난과 사회적 시선, 타인의 평가, 부정적 생각들 사이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신뢰하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당신의 작은 노력이 언젠가 위대한 성취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전 07화 누구 씨, 집 좀 살아요?라는 말에 담긴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