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정윤 Dec 06. 2024

당나귀와 소와 똥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4일 차: 소똥, 말똥과 함께 걷는 길


마음이 가벼워서일까? 어제까지 우울했던 감정은 네팔의 바람을 타고 카트만두 저 멀리까지 날려버리니 걸음걸음마다 재미있기 그지없었다. 4일 차의 일정은 타다파니에서 촘롱을 거쳐 시누와까지 가는 거리였다. 고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타다파니가 2,6980m였고, 츄일레 2,245m를 거쳐 촘롱 2,170m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시누와가 2,360m였다.


고도가 낮다고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끊임없는 하산과 끊임없는 등산이 이어지는 코스였다. 내려갈 땐 도대체 얼마나 오르려고 내려가는 거지? 할 만큼 내려가고 올라갈 땐 한도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의 재미는 마차푸차레나 안나푸르나와 같은 8,000m 급 설산이 쫙 펼쳐진 파노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날이 흐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백미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걷고 오르며 여러 마을을 지난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걷고 걸어가는 길


마을에 줄이 묶인 동물이란 별로 없었다. 닭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땅을 쪼아대고 (돌 밖에 안 보이는데 무엇을 먹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나귀들은 줄지어 걷다가 풀을 뜯어먹고, 염소와 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당나귀가 나타나면 절대 절벽 쪽으로 몸을 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전에 당나귀를 피하다 계단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ㄷㄷㄷ)


촘롱과 시누와까지 이어지는 길은 신기하게 되어 있는데 계단 하나하나는 높지 않아서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단이 적당한 높이로 촘촘히 놓여 있다 뿐이지 조금만 오르고 나면 한쪽은 가파른 절벽길인걸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나귀를 만나도 산 쪽으로 피하라고 한 것.


하지만 웃긴 게 당나귀도 산 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녀석들은 걷다가도 풀만 보면 한 눈을 팔고 풀을 뜯어서 주인에게 매번 욕을 먹는데 당나귀가 좋아하는 풀이 보통 산 쪽에 나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도 당나귀도 산 쪽으로 가려고 한다. 그럴 때에는 가이드가 작은 돌을 나귀 쪽으로 던져 쫓아주었다. (참고로, 길거리 동물들은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했다. 현지인들도 손으로 만지지 않고 적당히 작은 조약돌을 던져 쫓는 걸 보면 자칫하다 뒷발에 차일 위험 때문인 것 같다.)


가끔은 풀을 뜯는 소들도 본다. 소들은 한국의 황소와 다르게 몸이 짙은 회색빛이었고 (검은색에 가깝다.)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나 있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데 모두들 목에는 작은 종을 달고 있었다. 작은 종만으로도 어떤 소가 어느 집 소인지 안다니 신기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은 소똥, 말똥, 염소똥 천지였다. 똥을 피해 밟을 곳이 없을 정도였다. 어떤 곳은 정말로 푸지게도 싸놓았고 그나마 적다고 생각한 곳도 오래되어 마른 똥들이 굴러다녔다. 그럼에도 나는 그 동물들이 보기에 좋았다.


풀을 뜯고 있는 소
그림 같은 풍경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하나 같이 메어있지 않았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아 매번 사진을 찍었다.

한 10년도 더 전에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고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딱 한 정면만이 기억에 생생하다. 도살 직전의 소를 누군가 꺼내 풀밭에 풀어줬고 소는 마치 난생처음 햇빛을 본 것처럼 서 있었다. 귀가 팔랑 거리고 콧구멍이 커지고. 꼭 난생처음 자유를 느끼는 사람처럼 냄새를 맡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기쁘고 좋았는지 팔딱팔딱 뛰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떤 장면도 그 소가 어떻게 자랐는지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갇혀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가 그냥 나 같았다. 내 인생 같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소가 느끼는 것을 꼭 내가 느끼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나와 소 둘 사이에 차이점이 없었다. 내가 자연을 보고 기뻐하듯이 소도 그랬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고향이자 그리움이었다.


히말라야의 동물들은 인간과 같이 살고 있었다. 인간은 농사를 짓고 동물들의 힘을 이용하고. 인간에게 소와 당나귀, 염소는 단백질을 주는 양분, 고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가. 그리고 양평에 살면서 수 없이 보는 어린 생명들의 로드킬이 이곳에서는 없었다. 모두가 걷기 때문이다.


이곳이 좋았던 이유는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도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도시가 인간이 만든 문명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면 히말라야 산맥 깊은 곳의 마을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곳에 복잡한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지구상에 몇 곳은 그래도 여전히 느린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당나귀가 보인다면 산 쪽으로 대피하세요!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귀여워도 만지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일까요? ㅎㅎ)    


아침 숙소에서 보였던 설산. 지나온 숙소마다 아침이 되면 멋진 풍경에 깜짝 놀란다.
구름 낀 하늘도 어여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떤 모습이어도 산은 아름다웠다. 숙소에서 맞은 아침 해.
잠시 쉬는 곳에서도 말이 풀을 뜯고 있었다.
깊고 높은 골짜기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설산이 없으면 어떠랴. 이마저도 아름다운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