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떡갈나무 책상 치우기
그렇게 4일 차 아침이 밝았다. 마음이 그래도 전날보다 가벼웠다.
스티븐 킹 선생의 도움이 컸다. 뜬금없지만. 히말라야를 오기 전부터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있었다. 네팔에 와서도 틈틈이 심심할 때마다 (특히 비행기가 연착될 때) 책을 꺼내 들어 읽었다.
브런치에라도 부끄러운 글을 연재하고 있던 나에게 스티븐 킹 선생의 책은 구절마다 가슴에 박혔다. 이 중에서 특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다.
스티븐 킹은 <캐리>의 출간이 성공을 거두며 그 뒤부터 인기 작가로서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며 글을 쓰던 작가는 언제나 거대한 떡갈나무 책상을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성공을 거둬 여유가 있던 작가는 결국 거대한 떡갈나무 책상을 하나 사서 서재 한가운데에 놓고 6년간 글을 썼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마약과 술에 빠져 살게 된다. 6년간 쿠조를 비롯한 인기 소설을 매번 내놨지만 심각한 중독 상태였던 그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썼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로 상태가 심각해지자 부인의 도움을 받아 술을 끊고 재활을 하면서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티븐 킹은 떡갈나무 책상을 치워버리고 집필실 서쪽 처마 밑 한 구석에 그 절반만 한 책상을 놓았다. 그리고 떡갈나무 책상이 치워진 집필실은 아이들이 피자를 먹기도 하고 가족들과 가끔은 야구를 보는 공간이 되었다.
스티븐 킹은 말한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 전에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는 이유를 상기해야 한다고.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구절이 참 좋았다. 사십여 년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포함해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중요한 한 두 가지를 위해 삶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을. 삶의 한복판에 예술을 놓고 나머지는 치워버리는 그런 일을 말이다.
헌데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는가? ‘보겠다’는 생각 때문에 걸으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다 놓치고 있지 않는가 하는. 9박 11일의 여정이 보고 싶은 것을 못 본다는 것 하나로 다 의미 없어질 만큼 아무것도 아닌지 묻게 됐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더 기쁜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어떻게 사람과 동물이 살아가는지, 안개를 휘두르고 보여주는 히말라야의 위용은 얼마나 대단한지. 9박 11일 동안의 여행이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 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맡김’에 대해 생각했다. 히말라야가 나를 위해 맑게 개어줄 이유는 없다. 날씨 하나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소용없는 떼를 쓰고 우울하게 지내야 할 이유도 없다. 무엇을 보여주던지 그 안에는 내가 못 보았던 진귀한 삶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믿어야 했다.
정신승리라고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라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현재 주어진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그렇게.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히말라야는 모든 날씨와 함께 합니다. ‘이거 쓰게 될까?’ 싶어도 챙기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