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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Dec 09. 2024

[히말라야 트레킹] 못 먹어도 고!

흐려도 다시 걷는다.

5일 차: 이제부터 진짜다! 3,200m까지 다시 도전


시누와(2,360m)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5일 차의 날이 밝았다. 이제부터는 고도 3,200m에 위치한 데우랄리까지 걷고 다음날은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인 4,130m까지 고산을 오르는 일정만이 남아 있었다.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푼힐 전망대를 가면서 3,200m를 경험해 봤다고는 하지만 고산에서 쭉쭉 떨어지는 체력을 생각하면 계속 높아지기만 하는 고도가 두렵기도 했다. 더군다나 매일의 강행군과 흐린 날씨, 적응이 안 되는 화장실과 숙소가 며칠째라 마음 한 구석에서는 솔직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시점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무를 수가 없었다. 안전하게 고산병 없이 하산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내고 있다는 사실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볼 무수한 별들과 일출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5일 차도 흐렸고 비가 내렸다. 하하.. 이제는 우비가 거추장스러울 지경이어서 적당한 비에는 우비도 입지 않고 걸었다.  


트레킹 거리는 11km였고 약 7시간의 산행이었다. 시누와(2,360m)에서 출발해 밤부(2,300m)에서 차이티 한잔을 마시고 도반(2,600m)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히말라야(2,920m)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최종목적지 데우랄리(3,200m)에 도착하면 하루 일정의 끝이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이날은.. 걷고 또 걸었다는 것 외에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간에 히말라야에서 마신 커피가 참 달달하니 맛있었다는 정도랄까. 그 외에는 구름과 안개와 습도와 땀과 산행뿐인 하루였다. 흐린 날씨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날 찍은 것이 없어 당황했다. 정말 히말라야 커피 외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보이는 것이 없는 날이라 내면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나의 인생을 생각했다. 무엇에 자유로워지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떠올렸다.


오랜 세월 내려놓지 못했던 감정들과 상처가 떠오르고 나의 꿈이 떠올랐다. 삶에서 버리지 못한 오래된 것들은 내려놓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을 정성스레 한 걸음, 한 걸음에 담았다.


흐린 날의 산행은 삼보일배를 하는 마음처럼 고요하고 차분했다. 풍경이 보이지 않기에 걸음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음의 힘으로 나는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데우랄리의 하룻밤은 여전히 심란함의 연속이었다. 3,200m부터는 씻지 말라는 가이드의 경고가 있었고 데우랄리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땀을 흘려 온몸은 젖었는데 비가 와서 방 안에 습기가 가득 찼다. 이제부터는 2인실을 쓸 수가 없어 3인이 방을 같이 써야 해서 방은 비좁았다.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물병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눅눅한 침대에 누워 나는 코스모스를 읽었다. 히말라야에서 읽는 코스모스 책은 그 향기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생명의 탄생과 지금에 이를 수 있게 만든 수많은 우연들을 생각했다.


코스모스와 함께하는 밤은 더 이상 심란하지 않았다. 눅눅해지는 방과 씻지 못해 끈끈한 몸으로 새우잠을 자듯 쭈그리고 누웠지만 내 작은 머리에는 우주가 가득 들어찼다.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지내온 유구한 세월과 기적 같은 확률로 찾아온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하며 감사함에 젖어들었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가 실은 정말로 기적인 것이다. 역시 아인슈타인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천재였다. 그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나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을 담을 수 있는 물병은 정말 유용합니다. 하나 꼭 챙기세요!  

    추울 때는 물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 안에서 안고 잠들면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어요.  

    심심할 때를 위한 가벼운 책 한 권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는 e-book을 준비해 갔어요.


히말라야를 가기 전 폭포를 봤다. (이름을 잊어버렸다.)


데우랄리에 도착! 3,200m에 위치한 숙소였다. 여기서부터는 3인 이상의 다인실을 써야 한다.
잠시 비를 피해 쉬었던 곳. 매일 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날씨에 점점 사진도 안 찍게 되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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