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사실상 이 여행의 목적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오늘을 위해 이토록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날 걸어야 할 트레킹 거리는 5km였고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까지 해온 일정에 비하면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고도가 만만치 않았다.
데우랄리(3,200m)에서 시작해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를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 고도가 4,130m였다. 출발 전 가이드는 오늘부터는 정말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김없이 흐린 날이었다. (정말 매일 같이 흐렸다!!) 높고 깊은 히말라야의 산등성이는 여전히 밑동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구름과 회색 빛깔의 하늘,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이드의 말대로 천천히 걷지 않으면 숨이 차기 시작했다.
고도는 높았지만 길이 험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오르막길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만한 비탈길이 이어졌다. 3,200m 높이의 깊은 산속에는 탁 트인 평원과 같은 곳이 있었다. 꼭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반지 원정대가 된 기분이었다. 웅장한 산과 고원, 그리고 줄을 지어 걸어가는 일행들. 한 편의 장편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모험가들처럼 우리는 나아갔다. 아주 조심조심.
12시가 되기 전 우리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M.B.C)에 도착했다. 숙소 앞 넓게 트인 마당에 옹기종기 앉아 일행이 끓여다 주는 달달한 주스를 마셨다. (트레킹 중간중간에 따뜻한 주스를 줬다.) 여전히 눈앞은 잘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저 황토색은 땅이요, 그 뒤로 설산이 있겠거니 했다.
그래도 산이 크고 웅장하다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이 정도의 깊고 높고 거대한 산을 한국에서는 보지 못할 터였다. 지금은 이렇게 흐리더라도 내일 새벽은 맑기를, 그래서 밝게 빛나는 수많은 별무리들을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찬란한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산봉우리들을 (그것도 360도 파노라마로) 내일 아침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까지의 운수로 봤을 때는 절망적이었고, 구글 날씨 예보도 희망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마저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M.B.C에서 A.B.C까지 가는 길은 더 완만했다. 하지만 3,700m가 넘어가는 고도에 슬슬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증상은 손 저림이었다. 손가락 끝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식곤증이 오는 것처럼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꼭 히터를 틀고 고속도로를 오래 달린 것처럼 몽롱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아마도 산소가 부족하면서 온 현상인 것 같았다.
나는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걸으면서 복식 호흡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숨을 깊게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머리도 조금씩 띵하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목과 가슴을 거쳐 배까지 크게 부풀리고 다시 배에서부터 가슴, 목의 순서로 숨을 천천히 내쉬는 연습을 했다. 요가할 때 배웠던 호흡을 천천히 걸으면서 했다.
3,700m가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공기도 상당히 차가워졌다. 코에는 콧물이 질질 흘렀지만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코로 최대한 길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모습에 일행들이 고산병 약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높은 고도를 겪어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지와 같을 수는 없었다. 증상이 조금 나타난다고 해서 적응해 볼 시간도 주지 않고 약을 먹기는 싫었다. 매번 작은 고통이라도 제거하듯이 사는 삶에 의문을 품어왔지 않나.
나에게도 내 몸에게도 처음 겪는 일을 소화하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더 심해진다면 몸이 말해줄 것이라고 믿었고 그때에 약을 먹고 싶었다.
고산에서의 등산은 내 몸에 완전한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이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든 과정과 걸음을 내딛는 모든 과정, 그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에 깨어 있어야만 했다. 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목적지까지 건강하게 다다르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호흡을 이어가니 어느 순간부터는 증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너무도 기특했다. 나는 나의 몸을 신뢰했고 그 보답을 해주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잘했다. 고맙다’ 하며 인사를 했다. 여기까지 매일 같이 움직여준 몸에 고맙고 고산증에 잘 적응한 몸이 고마웠다. 그리고 적응을 하기 시작했는지 의식을 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평상시보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었다.
오후 3시쯤 우리는 A.B.C에 도착했다. 흐리던 날씨는 더 흐려져 꼭 비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매우 추웠다. 땀을 흘렸기 때문에 방을 배정받자마자 겨울 바지와 겨울 패딩을 꺼내 입었다. 저녁을 먹기까지 3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방에 있고 싶었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방은 덜덜 떨릴 만큼 너무 추웠다.
모두가 모여 있는 식당으로 향하자 방의 추위를 피해 자리 잡은 등산객들이 많았다. 난방도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온열기구(?)가 있어서인지 바깥보다는 훈훈했다. 너무도 많이 남은 시간, 할 일은 없었다. 나는 코스모스나 읽어볼까 하고 책을 꺼내 들었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서 다시 덮었다.
일행 중 하나가 윷놀이를 가져와서 윷놀이가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현지 가이드가 끼어 왁자지껄 하게 웃으며 윷놀이 몇 판이 이어졌다. 그 사이 저녁때가 되었다.
바깥은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영하의 기온을 기록했고 슬슬 맑은 밤하늘과 일출은 마음속에서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가닥 남은 미련 때문에 새벽 4시에 한번 나와보겠노라 다짐했더랬다.
A.B.C의 롯지는 태양열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전기불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방은 한기가 가득했다. 손난로와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을 챙겨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코끝이 시린 안나푸르나의 눈 내리는 가을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피곤했던 나는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새벽 4시에 깼다. 켜둔 알람이 울렸고 조심스레 헤드랜턴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밖은 새하얀 눈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기적적으로 안나푸르나 남봉을 중심으로 맑은 하늘이 나타났고 별이 떠 있었다. 그것도 양평 하늘보다 많은 별이. 내가 생각했던 경이로운 은하수가 아니더라도 잠깐 보여주는 별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귀하고 귀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보지 못했을 하늘이었다.
한 참을 목이 꺾어 하늘을 바라본 나는 4시 30분이 되어서야 자리로 들어왔다. 과연 내일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았다. 지금과 같은 기적 같은 행운이 나에게로 찾아올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다시금 잠이 들었다.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A.B.C. 는 춥습니다. 영상 1-2도에서 추우면 영하로 떨어져요.
따뜻한 겨울 점퍼와 추운 새벽을 지내기 위한 준비는 철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