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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Dec 11. 2024

[히말라야 트레킹]모든 것에는 다 계획이 있다.

삶이 이끄는 대로

7일 차: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도착한 곳


다음날 아침은 어젯밤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안나푸르나 남봉도, 마차푸차레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일출도 보지 못했다.


새벽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구름으로 산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일출을 보지 못했다. 넓은 골짜기가 장관이지만 가려진 구름 사이로 6,000에서 8,000미터급 산들이 즐비해 있다.


아침 식사를 한 후의 일정은 박영석 대장의 추모비를 다녀오는 일이었다. 밤새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웠다. 일정을 다 마칠 즈음에는 바람에 구름이 조금 이동해 안나푸르나 남봉의 봉우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지만 잠시라도 설산이 나오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나 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올 때쯤에는 구름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기적처럼 마차푸차레가 나오고, 안나푸르나 남봉이 나오고, 하나둘 구름에 가려져 있던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던 A.B.C를 중심으로 빙 둘러 웅장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방은 눈으로 하얗고 높게 내려다보는 산에 푹 싸여 있었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다니!’


가려진 구름이 다 걷혀 본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자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설산을 중심으로 고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높아 안나푸르나 남봉도 너무도 가깝게 보였다. 마차푸차레의 봉우리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구름이 걸려 있었고 봉우리는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한다는 가이드의 재촉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우리는 세 걸음에 한 번씩 사진을 찍었다. 자꾸만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분명 어제도 왔던 길인데 다른 장소처럼 낯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봉우리들.
떠날 때가 되어서는 모든 봉우리가 다 드러났다. 밤새 내린 눈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숙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마차푸차레.
등뒤에는 안나푸르나가 정면에는 마차푸차레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다니. 이런 보물을 구름 뒤에 숨기고 있었다니.


우리는 마차푸차레를 정면에 두고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마치 이번 여행이 오늘 아침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지난 며칠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걸어 여기까지 왔다. 매일매일 결국 보게 될지 못 보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히말라야를 가겠다 할 때에는 목표도 목적도 분명했지만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내 안에 없었다. 하지만 매일이 한 치 앞을 모를 일의 연속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수밖에 없었고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머지는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 히말라야의 등반은 이런 일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물 같은 풍경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스스로가 대견했다. 아프지 않은 몸에 감사했다. 매일 7-8시간씩 걷고 움직여주는 다리가 고마웠다. 잘 버텼다. 잘 버텨서 여기까지 왔고 이제 내려가는 일만이 남았다. 가슴은 가볍고 마음은 즐거웠다. 행복이란 이렇게 꾸준히 묵묵하게 한 걸음씩을 걸었던 사람에게 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 끝났다는 안도감,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났다. (과연…?)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햇빛이 강해요. 선크림과 선글라스가 필수입니다.   

추울 때는 가이드가 모자를 꼭 쓰라고 합니다. 고산병으로 머리가 아픈데 찬기운을 받으면 머리가 더 아파져서 그런 것 같아요. 겨울모자도 준비해 주세요.    

     하지만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나면 덥습니다.    


하산길에 정면으로 보였던 마차푸차레.
어디로 찍어도 장관이었고, 걷는 걸음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뒤를 돌면 안나푸르나가 펼쳐져 있었다. 정말 미쳤다! 는 표현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가는 중간에 호수가 있었다. 모두 사진 찍느라 바빴다. 사람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 지를 보다 보면 산이 얼마나 크고 웅장한지 알게 된다.
거대한 산과 개미만 한 사람. 이렇게 작은 사람이 여기까지 들어왔다. 한 걸음씩 걸어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여기도 이런 곳이었나? 구름에 가려져 숨겨져 있던  마차푸차레의 보물 같은 풍경.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지나 본격적인 하산의 시작이었다. 안녕! 고마웠다. 이제 나는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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