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길도.. 힘들다.
다 끝났다는 안도감은 곧 사라졌다. (하.. 인생!)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자 날씨는 곧 흐려졌다. 이제 익숙해져서 불만도 없었다. 산의 날씨가 시시각각 변한다지만 이번 산행 내내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하산길이어서 그런지 쉬는 시간도 없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원래도 하산을 힘들어하는데 쉬지 않고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더 힘들었다.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쉬지 않고 내려가기만 하니 슬슬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가는 일정은 내리막길이지만 가장 길고 오래 걸었다. A.B.C 4,130m 고도에서 M.B.C. 3,700m를 지나 데우랄리 3,200m, 도반 2,600m, 밤부 2,300m까지 고도를 뚝뚝 떨어뜨리며 걸어내려 갔다. (과장 좀 보태서 거의 굴러서 내려왔다.) 약 14km의 거리로 약 8시간이 걸리는 최장 거리였다. 하산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히말라야 카페를 지날 즈음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슬보슬 내리던 비는 어느덧 상의가 젖을 만큼 많이 내려 중간에 멈추고 우의를 꺼내 입어야 했다.
아침에 아름답게 빛나던 햇살과 마차푸차레의 풍경이 꿈만 같았다. 어느덧 설산은 보이지도 않는 비 오는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중간중간 우리를 따라오는 강아지와 수풀에서 뛰어노는 원숭이들을 벗 삼아서.
약 8시간에 걸친 미친(?) 하산길이 끝나고 밤부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오늘도 2인실에는 묵을 수 없다고 해서 다인실에 짐을 풀었다. 내일이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호텔에서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생각했다. 땀에 절은 옷 그대로…!
밖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어디를 가든 습했다. 땀이 식어 으슬으슬 추웠고 옷은 땀에 절어 있었지만 벗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씻지 못하고 무엇을 입어도 눅눅할 텐데 그냥 이대로 밤을 보내자는 생각뿐이었다.
저녁에는 하산을 축하하며 술을 한잔 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일행 중 한 명이 감사하게도 네팔 전통주를 스 마시고 싶은 사람에게 사비로 돌렸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거절할까 했는데 오랜 하산길에 몸과 마음이 지쳐 한 잔 달라고 했다.
네팔의 전통주는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정종 같은 맛이었다. 잔으로 꽉 채워주는데 그간의 고생을 조금 씻는데 도움이 됐다. 맨 정신으로는 잠을 이루기 어려웠는데 잘됐다 싶었다.
한 잔의 술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돈을 주고 사서 고생하는 거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나이 차이, 살아온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도 함께 웃고 떠들고 대화가 즐겁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이런 기분은 새벽까지 이어져 여자들만 자는 우리 방은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피었다. 덕분에 옆방에서 ‘땅땅땅’ 벽을 두드리며 자라고 경고를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땀과 꿉꿉함을 견뎌야 하는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마을 중간중간에 막걸리 파는 곳이 있습니다.
살 수 있는 곳을 지나치면 다시 그 맛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집마다 막걸리 맛이 달라요.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면 미리 사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집마다 직접 막걸리를 담그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