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 깊은 곳까지 갔다고?
드디어, 마지막 하산길이었다. 말 그대로 시원 섭섭했다. (매번 느끼지만 정확한 표현 같다.) 모든 일정을 다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빨리 하산해서 씻고 싶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히말라야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걷고 또 걸어야 하는데 오늘의 일정은 약 10km의 거리를 6시간에 걸쳐 걷는 일이었다. 아침 7시쯤 숙소를 나서서 밤부, 시누와, 촘롱을 거쳐 지누단다까지 가는 트레킹 일정이었다. 즉 4일 차에 끝도 없이 내려가고 끝도 없이 올랐던 그 길을 다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제 밤새 내린 비는 그쳐서 마지막 날은 맑고 청명했다. 밤부에서 시누와를 가는 길 내내 마차푸차레가 우리의 등뒤에서 마지막 하산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길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실체를 드러냈다.
가는 길 곳곳에 있던 뷰 포인트라고 했던 곳들에서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한꺼번에 보이는 절경을 마지막 날에는 보여줬다.
맑은 날씨와 오늘 저녁에 있을 따뜻한 샤워, 모든 일정을 성공리에 마쳤다는 성취감에 하산 길은 기분이 좋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누와(2,300m)에서 끝도 없이 내려와 (약 1,900m까지 내려간다!) 다시 2,000m에 있는 촘롱까지 걸어 올라갔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7일간 얼마나 걸었고 어디까지 갔다 왔는지를 상기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등산 좀 했다고 하면 히말라야를 들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헥헥거리면서도 즐겁게 오르고 내렸다.
촘롱에서도 거의 꼭대기에 위치한 점심 장소에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였다. 이 많은 계단을 쭉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 그리고 저 깊은 산맥 안쪽까지 들어갔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크지만 낮게만 보였던 산들이 내려와 보니 아주 멀리서 우뚝 서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높게, 그리고 깊게 들어갔는지가 새삼 눈에 보였다.
‘한 걸음이 중요하다.’
별 것 아닌 이 말을 가슴 깊이 담았다. ‘내가 저 길을 모두 걸어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끝도 없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으며 다녀왔다. 한 걸음이 이토록 먼 거리를 다녀오게 한 힘이었다.
여행 중에 읽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도 장편 소설도 결국 매일 쓰는 한 단어, 한 단어가 모여서 된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한 단어들이 모여 장편 소설이 된다는 것. 아무렇지도 않은 진실 하나가 실은 위대한 것이다.
네팔에 도착한 지 이튿날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매일 걷는 한 걸음이 완성한 성취였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왔던 일정과 반대로 지프를 타고 내려가 나야풀에서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돌아왔다. 차로 산을 빠져나오는 시간만 2-3시간이 걸렸다. 지프를 탈 때쯤 저 아래 계곡이 보였는데 그 계곡을 눈앞에서 볼 때까지 한 참을 타고 내려와야만 했다.
‘그래, 내가 이런 산을 다녀왔다.’
그처럼 깊은 산을 우리 모두 건강히 다녀왔다.
포카라에 도착하자 며칠간 자지 못했던 잠과 매일 걷는 걸음으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씻는 일이었다. 따뜻한 물로 하는 매일의 샤워가 이토록 그리운 일인지 몰랐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하찮은 일상의 모든 것이 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매번 깨닫고 또 깨닫는다.
오랜만에 눕는 푹신한 침대, 샤워를 해서 뽀송해진 몸은 꿀 같은 잠으로 이끌었다. 그날 나는 올해 들어 가장 달콤한 잠을 잤다.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출렁다리를 여러 번 건넙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고려하세요.
출렁다리를 당나귀도 같이 건넙니다. 흔들리는 좁은 다리에 말똥이.. 피해서 조심히 건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