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이 있냐고요?
마지막 포카라와 카트만두의 일정은 문화탐방이었다. 쉼을 위한 일정이라고나 할까. 호텔에서 푹 자고 잘 먹고 늦게 일어나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사진도 찍는 평범하고 평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멈춰져 있던 일상이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도시로 갈 날이 다가왔다.
카트만두에서의 마지막날 사람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또 하라고 하면 하시겠어요?”
또다시 히말라야에 도전할 것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당분간은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질리게 걸었다. 그래서 선뜻 그 물음에 답할 수는 없었다. 20년 전에 인도여행을 왔고 지금은 네팔에 와 있으니 아마도 향후 20년 간은 올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기후위기로 눈이 많이 녹은 히말라야를 보며 10년 후라도 여기가 이 모습일까? 나는 정말로 앞으로는 없을지도 모를 경험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여행에서 내 의도는 완성되었는가? 이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나만이 아는 성취감, 해냈다는 기쁨과 자신감.
삶의 진정한 기쁨은 심장 저 안쪽, 영혼의 내측에서 일어남을 나는 안다. 누군가 인정해 주는 것도 트로피를 받는 것도 이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기쁨은 나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했을 때에야 알 수 있다.
나의 진실한 영혼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말라야를 다녀오기 전의 나보다 다녀온 후의 내가 더 좋다고.
그것으로 된 것이다.
히말라야의 산행이 막 끝나 포카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이란 히말라야 등반과 같아서 보이지도 않는 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어야만 한다. 이 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이란 올 수 있는 것인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나는 히말라야를 생각했다. 이 산을 건넌 것처럼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말이다. 맑을지 흐릴지 모를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놓지 않고 매일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겠노라고.
걱정과 불안으로 날뛰던 심장은 고요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에서 그랬듯 삶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삶의 의미는 살아 있을 것임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름에 휩싸여 있더라도 그 안에 경이로운 설산이 숨겨져 있음을 신뢰하고, 기적 같은 순간에 그 자태가 드러나 모든 의심을 거두어 줄 것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나는 엄마가 누워 있는 6인실 병실에 놓인 좁디좁은 보호자 침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날마다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매일 하면서. 날이 흐리든 맑든 개의치 않고, 글을 쓸 충분한 조건이 갖춰질 날을 기다리지 않고 날마다 글을 쓰고 있다.
날이 흐릴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언젠가 히말라야에서 본 그 하늘처럼 경이로운 순간도 나에게 올 것임을 이제 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뒤돌아 왔던 길을 보며 매일 걸었던 한 걸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이야기할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삶이라는 히말라야를 걷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