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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의 크리스마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다.

by 콩작가

핀란드의 크리스마스는 할 일이 없다. 물론 핀란드에 가족이 있다면 아마도 분주할 테지만. 한국에서 추석과 설에 오갈 데 없는 외국인의 심정을 여기서 조금 느껴본다.


거리는 한산하고 웬만한 식당들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9시 30분쯤 늦은 아침해가 뜨고 열어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다른 동 아파트의 창문이 보인다. 반짝반짝 주홍빛 전구들을 달아놓은 트리와 별 장식들이 따뜻하다.


겨울은 따뜻하다. 혼자 말을 입 안에서 조용히 굴려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추운 겨울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더운 여름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음과 양의 조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추운 겨울 속에서 따뜻함이 피어나고 더운 여름 속에서 시원함이 드러나는 것. 세상의 조화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둠에서 밝음이 태어나고 음이 짙어지면 양이 태어난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균형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나 보다.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뉴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나는 집을 사고 싶었다. 한평생 집을 사고 싶다는 욕심을 별로 가져본 적 없는 나조차 집을 사고 싶었다면 그때는 정말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때가 맞나 보다. 회사에서 동료만 만나면 주제는 주식, 부동산이었다. 너도 나도 돈을 벌고 싶어서 난리였다. 그때 잠깐 뭐랄까.. 이렇게 우~하고 달려 나가는 욕심이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동갑내기 동료가 이런 말도 했었다. 자신은 임대 아파트 사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고. 아마도 내가 자식이 없어서 이해를 못 할 거라고 했다. 부모란 자식이 자신보다 수준 높은 사람을 만나고 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는 돈이 있어야 수준이 높다는 의미로 들렸다.


취미로 임장을 다니는 동료도 그런 말을 했다. 저 집의 집 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임대 아파트가 전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사는 동네의 수준을 이야기했다.


어느 회사의 중역 중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회사 기조는 법은 지키고 도덕과 윤리는 이윤에 따라서 지키는 것이라고.


너도 나도 잘 살고 싶어 했다. 끝도 없는 욕심이 물 잔을 채우고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까지가 성장인 걸까? 모두가 어디를 가고 싶어서 위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살고 있는 걸까?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이 커지면 끝은 무엇이 될까?


어둠이 가득 차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에 뉴스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한계를 드러내나 보다라고. 지도자는 그 사회의 수준을 알려준다고 했던가?


끝도 없는 욕심의 끝은 전쟁과 폭력인가 보다. 방해하는 사람은 다 죽이고 제거하고 나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 끝에 도사린 세상이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그런 세상은 폭력이 만연하며 자유가 억압되는 세상임을 언제나 보여줘 왔다. (인류의 역사까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가 그 집약본이다.)


인간은 이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종들이 멸종하고 인간이 죽어야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것일까?


어둠이 짙어지면 빛이 차듯이 이제 다시 빛이 차오를 시간인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제어하지 않는 욕망은 공멸로 치닫는다. 지난 몇 년간 드러나는 일들은 놀랍다. 이 사회에 이런 사람들도 있었나? 적당한 욕심을 부리고 적당히 안온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상식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이 정도로 이기적이고 이 정도로 탐욕적인 사람들이 있었는지 지금 다 빛 아래로 쏟아져 나오는 중인 것 같다.


모두가 민낯을 드러냈다. 욕심은 한계를 드러내고 기울었다. 그 기울어진 잔에 우리는 무엇을 채워 균형을 맞출 것인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한 겨울에 가장 따뜻한 날인 크리스마스, 세상은 질문을 던졌고 이제는 답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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