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일이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

원수가 원수가 아님을 알게 될 때

by 콩작가

어렸을 때 일에서 해방된 친구들이 부러웠다. 취집을 하는 친구들도 부럽고 재테크를 잘해서 가슴속에만 품고 있던 사표를 던졌다는 아무개의 이야기도 부러웠다. ‘일을 안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남이 그냥 주는 돈으로 살아보고 싶다.’ 친구들과 만나면 꼭 한 번씩 하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때로 일이 삶을 구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답도 없는 고민과 걱정거리가 많을 때 그저 하루 하루 해야 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걱정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일이 많았다. 스무 살 시절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불안도 그렇게 지나갔다. 답도 없는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일로 도망치는 것은 나름 건강한 회피 행동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 때문에 성격도 많이 변했다. 극도로 내성적이었고 불안했던 어렸을 때의 성격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없어져 버렸다. 성격이 변했다라기 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감정과 생각의 체계가 변했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어렸을 때보다도 더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아파도 배움으로 여기고 싶었던 태도가 더해져 그럭저럭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점차 머리가 열리고 가슴이 해방되어 갔다고나 할까.


엄마가 아프고 병원에서 2주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일이 삶을 구원하고 있다. 병원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의 양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기대 큰 걱정 없이, 답답함 없이 병간호를 하고 있다. 자칫 갇혀 있는 기분이 들 법도 한데 어차피 일해야 하는데 갇히면 땡큐지 이런 마음으로.


이 정도까지 고찰하고 나면 남는 것은 감사함이다. 원수 같던 일이었지만 나를 살렸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인생이 가진 여러 가지 얼굴을 알게 된다. 모든 일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 모든 일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좋고 싫음에 매일 같이 파도를 탈 필요가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인생이라는 산을 넘는 고비고비에서 필요한 것들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 고난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삶은 더 다채로워지고 자애로워진다.


일이 있어 감사합니다.


<끝>


* 사진: 저녁을 먹고 나면 6시 내 고향을 본다. 소파에 앉아 매점에서 산 수면 양말을 신고 휠체어에 발을 올리고 엄마는 TV를 보고 나는 글을 쓰던가 일을 한다.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도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다. 예측불가한 삶을 살면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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