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앉아서 도란도란
엄마를 병간호 한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텔레비전이 없는 병실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도란도란 이어지는 엄마와의 수다다.
엄마는 이야기꾼이다. 60년대 10대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20대 시절을 보낸 엄마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처럼 언제 들어도 낯설고 새롭다.
어느 날은 엄마가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는 겨울이 되면 전교생이 모여서 토끼몰이를 했어. 몇 그룹으로 나눠서 와- 하고 토끼를 한 곳으로 몰고 가믄..”
여기까지 듣던 나는 혼란이 왔다. 뜬금없이 시작된 토끼몰이 이야기도 그렇지만 학교에서 왜 토끼를 잡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60년대 개체수가 늘어난 토끼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일이 있었나 짧은 지식을 더듬어 보다 궁금해서 물었다.
“토끼는 왜 잡았어?”
“잡아서 국 끓여 묵어.”
여기까지 듣고 웃어버렸다. 엄마도 말해 놓고 웃기는지 웃기 시작했다.
“아니.. 잡아먹으려고 선생님들까지 동원해서 잡은 거냐고.”
“잉.. 그땐 그랬어.”
도대체 어디서 토끼를 손질했고 누가 국을 끓였는지까지는 묻지 않았다.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한참 책을 읽다가 엄마 손톱이 긴 것을 보고 손톱을 깎아 주겠다고 했다. 혼자서는 손톱을 깍지 못해서 내가 오면 부탁해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책을 내려놓고 작은 병실 침대에 달린 간이 책상을 펴고 둘이 마주 앉았다.
저녁 7시가 다 넘어가는 시간, 사방은 조용하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며 손톱을 깎는 지금이 꼭 엄마 옛날 같았겠다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내가 읽는 책을 뒤적거리며 옛 생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옛날에..”
“응.”
“가사 시간이 있었어.”
“가사?”
“잉. 가사. 그라믄 여학생들이 주르륵 앉아서 막 수를 놓고 그랬어. 선생님은 교탁에 앉아서 책을 읽어 줬는디. 선생님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수를 놓는 거여.”
“어떤 책을 읽어줬는데? 교과서?”
“아니~ 소설책 같은 거. 다른 책도 읽어주기도 하고.”
나는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미소 지었다. 겨울철 교실 한가운데는 거대한 화목난로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다. 흰색 교복 상의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들이 앉아 수를 놓고 있다. 그리고 교탁에는 단정한 모습으로 조용히 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이 앉아 있다. 교실 안은 화목난로가 타고 주전자가 끓는 소리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를 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와 수를 놓는 소리만이 들렸을 것이다.
“엄마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도 없고 밤에는 뭐 했어?”
뜬금없이 궁금해서 물었다.
“할무니가 이 잡아줬어~”
나는 또 웃어버렸다. 옷깃을 뒤집고 손주 머리를 빗으로 빗으며 툭툭 이를 터뜨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어렸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50년대 중후반과 60년대는 분명 가난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막 끝나 나라는 폐허가 된 땅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토끼를 잡아야 할 정도로. 그럼에도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이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한다. 조용한 할머니가 된 엄마는 분명 어렸을 때에도 귀여웠을 것이다. 나는 어느덧 쭈글 해진 얼굴과 손을 보다 다쳐서 큰 상처가 난 다리를 쓸듯이 어루만졌다. 괜히 시큰해진 탓이다. 시간은 이토록 잔인하게 앞을 향해서만 흘러간다.
<끝>
* 사진: 구글링 해서 60년대 초등학교 풍경이라고 해서 넣었다. 엄마의 빛바랜 사진을 올릴까 했는데 괜히 엄마 허락도 없이 올린다는 것이 미안해서 내려버렸다. 일을 하며 글을 쓰려면 목, 금 정도 쓰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해 발행일을 정했는데 비가 오는 3월의 연휴에 글이 쓰고 싶어 근질근질해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