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병원의 아침은 오전 7시가 되면 시작된다. 6시부터 깨는 사람들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불이 탁 켜지는 시간은 오전 7시다. 그쯤에는 각자 화장실도 다녀오고 세수도 하고 개인 정비를 한다. 그러면 8시쯤 아침밥이 나온다. 병원의 하루는 병원이라는 것만 빼면 평화롭다.
아침 먹고 쉬다가 점심 먹고 쉬고 저녁 먹고 잔다. 그 외에 할 것이 없다. 프리랜서라 아침밥을 먹고 엄마 좀 챙겨주고 나면 9시부터는 일을 하지만. 이상순 음악으로 알고리즘을 돌려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그리고 틈이 나면 글을 쓴다. 내 삶에 글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올 줄은 몰랐다. 15년 간 언론 홍보를 했기 때문에 보도자료를 써왔다. 그래서 글 쓰는 일이 어색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일이 아니라 그냥 내 글을 쓴다는 개념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언론홍보를 했으니 영어도 좀 잘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맡아서 글로벌 회사에 들어가 외국에서 사는 것이 한때의 꿈이었다. 그 꿈속에 내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소망은 없었다.
누가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모르겠다. 글을 써와서라고 하기에도, 글을 잘 쓰니까라고 하기에도 무엇이든 이유로는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쓸까?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슴에 한 가득이라 부족한 글솜씨를 빌어서라도 표현하고 싶다고. 그것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브런치에 글을 쓴 지 3년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기획이 별로 없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마치 오래된 스웨터에서 털실 하나를 빼는 것 같다. 삐죽 솟아나 있는 털실이 보이면 그냥 잡아당겨 보는 것이다. 그러면 털실이 풀리는 것처럼 쌓였던 이야기가 줄줄줄 새어 나온다.
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언젠가 나다운 글들로 무엇인가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만 해본다. 지금은 풀려버린 실오라기처럼 힘없이 하루를 기록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바쁜 일이다. 글이 일상이 되고 보니 그렇다. 하루 한두 시간이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따로 빼야 하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면서는 쓸 수가 없다. 물론 TV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글을 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저도 온전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 어느덧 귓가에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내면에 천착하는 순간 와야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루 한 두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바쁜 일이 된다. 또 글의 소재는 매일의 경험에서도 나오지만 이런저런 생각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책도 읽어야 한다. 최근에는 혼자서 공상만 하고 있던 스토리를 써보고 있는데 소설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쓰면서 궁금한 것들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다시 책을 읽게 된다. 소설은 좀처럼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꾸준히 또 하루 한두 시간을 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참으로 바쁘다. 혼자만의 시간을 적어도 3-4시간은 가져야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쓰고 싶던 이야기도 쓰고 글을 쓰면서 궁금했던 책도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일을 하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누가 가둬두고 글만 쓰게 해줬으면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글을 각 잡고 쓰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틈이 나는 대로 쓴다. 엄마가 잘 때 조금씩 쓰기도 하고 평소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쓰기도 한다. 어떨 때는 그냥 종이에 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별 의미도 없는 몇 자를 적어본다. 부끄럽지만 발행을 하는 것은 아무나 별생각 없이 읽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새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하고 말을 건네 보고 싶기 때문이다.
<끝>
* 사진: 요즘의 업무 환경이랄까.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재밌지는 않다. 누구나에게 열린 공간이라지만 플랫폼에서 분명 원하는 글이 있다는 느낌을 준달까. 언젠가 여기에 글을 그만 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성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