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핀란드에서 돌아오자마자 프리랜서로써 첫 일이 주어졌다. 오래전에는 직장 상사였고 지금은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는 대표님이 연락해 일거리를 주셨던 것. 2달 사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회사일이 많아서 부른 거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 정기적인 출퇴근을 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퇴사를 하고 나름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공중에 붕 뜬 것처럼 불안정했던 마음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건건히 일을 해주고 급여를 받는 형태가 아니고 주 5일 8시간을 일해주고 월급을 받는 방식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만 바쁜 기간이 지나면 재택으로 일을 해도 되고 프로젝트를 이끄는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다르다. 만약 내가 이 회사를 정직원으로써, 그것도 내 나이와 연차에 걸맞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버겁다. 나이는 거꾸로 먹는지 자꾸만 커져가는 책임과 의무감에 숨이 턱 막히고 달아나고만 싶다. (대신 급여가 줄었다. 그래야 공평하지.)
어쨌든 뜬금없이 불어오는 바람처럼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운 좋게 일을 시작하면서 다소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안정하다. 언제든 ‘이제 당신은 필요 없으니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려올까 두렵다.
프리워커가 된다는 것,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불안정감과 불안을 마주하는 일이다. 프리워커의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이것이 가장 크고 중대한 관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가 이렇게나 어려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래 봬도 명상과 요가를 비롯해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다년간 다져진 마음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불안은 너무도 쉽게 마음의 성을 함락시켜 버렸다.
무엇에 이토록 불안한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일이 아니면 이제 돈벌이가 없을까 봐 불안하고, 내가 계획했던 일이 안될까 봐 걱정이고, 하반기에 있을 전세 연장도 걱정이다.
불안은 불만을 쌓는다. 부모님이 조금 더 잘 사는 분이셨더라면, 내 짝꿍이 나보다 능력자에 돈도 많았다면, 회사를 다닐 때 더 잘 모아뒀더라면. 불안한 마음에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이 왜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지 알 것 같다.
이제 거기까지 가면 멈추어야 할 순간이 온다. 아무 소용없는 생각들이다. 불안이라는 놈은 시간을 등에 업고 달린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들이다. 지금, 오늘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시처럼 발을 내려다본다. 이 발이 이 땅에 잘 붙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걷고 있을 뿐인 것을 자각한다.
‘나는 단지 걷고 있을 뿐이고,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지금 해야 할 것은 그냥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뿐이라고, 어디 가야 할 곳도, 되어야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그러면 다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 누군가가 프리워커로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라고.
<끝>
* 사진 설명: 답답한 마음에 한강을 뛰다가 찍었다. 동이 터오는 새벽, 흠뻑 젖은 땀, 차가운 바람을 사진에 담았다. 결국 몸과 마음의 균형을 누가 더 쉽게 이루느냐가 세상의 모든 성패를 가르는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