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알고 있는 것

나만 아는 기쁨, 그 충만함에 대하여

by 콩작가

스물한 살 때 인도 여행을 했다. 2003년. 로밍도 없던 시절, 배낭 하나 메고 지도책과 여행 책자만 들고 40일간 무계획으로 떠났다.


‘델리로 들어가 델리로 나온다.’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여행책자를 보다 끌리는 장소가 있으면 무작정 갔다. 그렇게 심라와 다람살라를 거쳐 맥그로드 간즈까지 갔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곳에는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었다. 포장도 되지 않는 맥그로드 간즈의 흙 길은 수행을 하는 사람, 뇌과학자, 종교학자, 여행자가 뒤섞여 활기를 띄었다.


그곳이 지금까지 기억 남는 이유는 여행으로 갔지만 생각보다 깊이 있는 인생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들은 한 마디를 20대 중반부터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내면의 깊이를 키워라. 내면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이해하는 것이 남다를 것이다. 그렇게 행간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 어느 날 책을 읽다 전율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말의 의미를 음미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느끼는 기쁨은 그 누구도 모른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행복감이다.’


깊은 이해에서 오는 전율, 그리고 나만이 아는 기쁨. 이 말을 듣는 순간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 같은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었다. 그 행복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후 나만이 아는 기쁨보다 남들과 비교해서 얻는 기쁨을 더 쫓았다.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 싶다.’


욕망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더 큰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능력을 쌓아 더 좋은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10년쯤 그런 세월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 편의점 음식을 먹고 불규칙적으로 자면서 달성해 온 어느 것도 남들이 보기에 대단할 것이 없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더 많았고 나 보다 좋은 환경에 놓인 사람은 더 많았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인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만이 아는 기쁨은 생산적이지 못했다. 글을 쓰는 일도 매일 달리는 일도 그랬다. 날마다 오랜 시간을 쏟아붓지만 알아주는 이도, 박수 쳐주는 이도 없다.


어제도 6km를 뛰었다. 병간호를 하면서 비 오는 며칠을 빼고 매일 8-9km를 느리게 달리고 있다. 가슴 깊숙이 만족감이 차오른다. 엄마가 아프고 인생은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달렸노라고. 몸을 움직이며 나를 돌보았노라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내 글이 인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글을 쓰는 일로 돈을 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인기를 위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내 안 깊숙이 차오르는 만족감이다.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가슴속 깊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다는 만족감이 글을 쓰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도 대신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삶은 누구도 모르는 기쁨이 가득할 때 행복하다. 가족도 모르고 연인도 모르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쁨, 전율이 많을 때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더 성공적인 삶을 위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충만함에 귀 기울인다.


<끝>


** 사진: 뛰면서 사진 한 장을 안 찍었다. 챗GPT가 만들어준 이미지. 저렇게 좋은 길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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