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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Apr 11. 2022

몸이 말해주는 것

수련 일지

"당신은 당신에게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가? 당신과의 동거가 편안한가?"


우리는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기를 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시간이면 평소 듣지 않던 음악을 듣고, TV를 켜고, 핸드폰을 보면서 웹툰에 빠지고 그것도 안되면 온갖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하던가, 친구를 만나러 나가든가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하지만 진정 지루한 것, 심심한 것을 못 참는 것인가? 아니면 심심한 틈을 타고 일어날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나와 마주 보는 것이 무서운가?


1. 생애 첫 묵언 명상

 #. 자이요가명상에서 JYT 과정을 듣는다.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과정과 결합된 요가 심화과정을 듣고 있다. 5주 차의 과정은 '묵언 명상'이었다.


#. 내가 이해한 마음 챙김이란 이 순간에 깊게 있어보는 것이다. 현존이란 나의 몸에, 나의 감각에, 이 순간에 일어나는 나의 마음에, 흐름에 함께 있는 것이다. 생각을 따라 미래로 또는 과거로, 망상으로 도망가려는 마음을 잠시 붙잡아 두는 것이다.


#. 마음을 붙잡는 것은 잘 안된다. 인간은 하루에 수백만 가지 생각을 하고 살고 마음은 원래 생각과 망상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때 내가 연습할 것은 그 또한 바라봐주는 '관용'이다. 따뜻하고 친절을 담은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내가 잠에 빠져들었구나', '내가 잡생각이 많구나', '내가 이런 감정이 들었구나' 그저 바라보고 다독이며 다시 호흡으로, 감각으로, 내 몸으로 돌아온다. 그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나의 오전 묵언 명상은 잠과의 사투였다. 요새 생각이 좀 줄었고 마음은 차분해졌다. 그 상태에서 바디스캔 명상을 하니 머리가 멍해졌다. 어차피 생각이 안 일어나니 알아차려질 것도 없었고 감각에 조금 집중하다 보면 지루해지기 쉬웠고 그러면 뇌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잠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피곤한가? 이번 주는 내가 피곤했나? 스스로 바라봤다. 근데 좀처럼 명상으로 빠져들어가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 몸에 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없는가? 갑자기 알아차려졌다. 나의 잠은 피곤 때문이 아니라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의 충돌임을 알아차려졌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줘." "너는 나를 함부로 대하잖아.." 몸이 나에게 말해줬다. 응?? 내가? 너를? 이렇게 오전이 끝났다. 혼란의 도가니다.


#. 오후 시간이 되어서 나는 나의 분노를 알아차렸다. 내가 나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몸이 아픈걸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여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은 마음.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혹사시키고 싶은 마음. 이런 게 왜 나에게 있지? 나는 왜 화가 나있지?


#. 나의 화는 너무도 오래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화가 나 있었다. 갈 곳 없는 분노는 나로 향했다. 하지만 화가 난 나의 마음은 너무도 과격했기에,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나의 무의식과 사회의 통념이 묶어 두게 만들었다. "나오지 마." 나는 분노에 족쇄를 채워 저 무의식 밑에 가라앉혀 뒀던가.


#. 나는 발을 쿵쾅쿵쾅 구르며 화를 내는 나와 함께 있어줬다. 소리를 지르고 깽판을 치며 물건을 막 던지는 깡패 같은 나와 조용히 함께 있어줬다. 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안다. 나의 분노는 오랜 상처 때문이었고 깊은 소통이 불가능했던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는 머리를 쓰다듬고 친절을 잃지 않고 함께 있어줬다. 모든 걸 들어줬고 화가 나 있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마음속에서 어린아이로 등장했다. 이유는 모른다.) 꼭 안아줬다. 동네에 이런 애가 있다면 나는 필시 안아줬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나인데 어떻게 품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

 

#. 나는 오늘 묵언 명상을 하기 전에 이런 의도를 세웠다. "내가 하는 경험이 그 무엇이든(그것이 슬픔이든, 아픔이든, 불쾌함이든) 마음을 열고 경험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


#. "나는 충분하다.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충분히 가치 있고 세상에 내 자리는 언제나 있다." 나를 위해 나는 이 말을 명상할 때마다 한다. 자애명상을 할 때는 더 오래 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해준다. 그리고 나와 세상을 향해 "슬프지 않고,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불안하지 않고 안전하고 평온했으면 좋겠다. 너무 애쓰지 않고 인생이 수월하길 바란다. 건강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준다.


#. 경험 상 말을 하는 동시에 어떤 부분이 치유가 된다. 하지만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나를 해치는 마음, 상처, 왜곡된 나의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등장한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지겨워질 때까지, 지겨워지더라도 사랑을 주리라 마음먹는다.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전환이 일어난다.


2. 나의 몸과 함께 있어 주는 것


#. 나의 몸은 나의 집이다. 40년의 인생의 모든 것을 함께 해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따뜻한 햇살을 느꼈고, 때로는 아픔을 같이 했다. 나의 친구와 같은 몸에 안전하게 마무르며 뿌리를 내리고 싶다. 떠다니는 생각을 쫒느라 삶의 순간순간을 놓치고 살고 싶지 않다.


#. 10시부터 6시까지, 핸드폰도 없이 시계도 없이 나는 나와 온전히 함께했다. 먹을 땐 먹기 명상으로 충분히 음식과 세상과 나와의 연결성을 느꼈고, 호흡을 통해 감각을 통해 나에게 머물렀다. 나와의 동거는 이토록 편안했다. 나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왜 그토록 절박하게 피하고 싶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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