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터 나와의 진정한 동거를 시작했다
<들어가기 전에>
이곳은 요가나 명상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명상을 통해 무엇을 알아가고 변화해갔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쓰는 곳입니다. 명상과 요가를 오래 하진 않았지만 명상과 요가는 진정한 맛은 삶과 녹여질 때, 삶과 내가 하나가 될 때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처음엔 숙제처럼 시작했고 제대로 된 무엇인가를 배운다 생각했지만 결국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이야기였음을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진정한 나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요가와 명상을 시작한건 이런 질문으로부터였진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한 내 모습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해하는지 모두 다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요가는 아주 세세한 것에서부터 나에 대해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켜줬다. 지금 나의 감각은 어떠한지, 마음은 어떠한지, 짜증이 일어나는지, 회피하고 싶은지. 이런 마음이 들때 어떤 판단과 평가도 없이 그저 바라보고 알아차려주는 연습을 했다.
무엇인가를 알아갈 때 우리는 처음에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다. 이런 것은 나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것은 잘 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슬며시 옆으로 치워두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갈 때 첫 과정일 것이다.
그 대상이 나로 바뀌었을 때 나는 알아차리기만 할 뿐 판단, 평가는 필요 없다. 때때로 한 동작을 오래 해 힘들어 지거나 숨이 가빠오면 '아, 내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때로는 요가가 두렵고 싫을 때가 있다. 그러면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고 요가가 늘지 않는 것, 잘하지 못함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거부감 아래에 놓인 실패 할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무엇을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도 알아차린다.
그리고 한 차례 다독거려 준다. 지금 나는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나? 하고 물어본다. 다른 더 어려운 동작을 할 수 있나? 스스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지쳐있음을 알아차려 주고 쉬어준다. 때로 하기 싫다, 더 힘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저 바라봐 준다. 그럼 그 생각은 파도가 지나가듯 지가나 버린다. 그저 지나가는 생각이었던 것임을 알아차리고 그때 컨디션에 맞게 다시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현재에 있다. 내 생각이 이곳에 있지 않고 과거로, 미래로 흘러갈 때 나는 나를 잃는다. 현재 느끼는 고통을 잊고 과거에 매몰되기도 하고,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현재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알아차려주는 것은 현재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지금 통증이 있나? 개운함이 있나?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나면 요가를 하는 1시간 나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결국 나에게 요가와 명상은 모른다는 것을 진실되게 받아들이고 안다는 것, 알아차린 다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매트를 벗어나면 일상에서 정신이 없는 순간을 제외하고 때때로 아, 지금 나는 숨을 쉬고 있지 않다. 알아차려 준다. 그때 다시 내 감각을 느껴본다. 그리고 알아차린다. 잠시 나는 앞으로의 업무 걱정에 사로 잡혀 있었구나 알아차려 주고, 불필요한 고민 또한 알아차려 준다. 잠시 호흡을 하고 나면 머리가 명료해진다.
이 별 것 아닌 과정이, 나를 알아차려주고 알아가는 과정이 첫 시작이었다.
또한 그것만이 평생에 내가 꾸준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2022년 3월